[서울광장] 디지털 경제주권과 ‘라인 사태’

[서울광장] 디지털 경제주권과 ‘라인 사태’

오일만 기자
오일만 기자
입력 2024-05-14 04:02
업데이트 2024-05-1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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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기업 합작기업 탈취 의심
소극 대응 정부, 총력전 펼치고
국제 연대로 日압박 막아내야
‘플랫폼 패권’ 제도개선 계기로

일본 정부의 네이버 지분 조정 요구로 촉발된 ‘라인야후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는 중이다. 일본 정부가 개입해 한일 합작기업의 경영권을 뺏으려는 의도가 알려지면서 최근 한일 경제 관계에서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복잡한 지분 관계부터 살펴야 한다. 2011년 첫선을 보인 라인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기획하고,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가 개발을 총괄한 한국산 서비스였다. 2021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각각 50% 출자해 설립한 A홀딩스가 지배(지분율 64.5%)하는 구조다. 단 1주라도 주식이 넘어가면 네이버가 경영권을 잃어버린다.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라인은 1억 2000만명의 일본인 가운데 80%에 해당되는 960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 중이다.

일본 정부가 개입한 것은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일부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후다. 일본 총무성은 이례적으로 두 차례의 행정지도를 통해 보안 강화 등의 요구는 물론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까지 거론했다. 누가 봐도 일본측에 경영권을 넘기라는 압박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사장은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강하게 요청하며 총무성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8일엔 신중호 CPO의 사내이사 퇴임을 의결, 이사진 전원이 일본인으로 채워졌다. 사전 치밀한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가 행정지도를 하고 일본인 경영진이 이를 뒷배 삼아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일본이 과연 세계 3위의 시장경제 국가인가를 묻고 싶을 정도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합작으로 기업을 빼앗으려는 시도나 다름없다.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이 5년 전 국가 권력을 이용해 정보기술(IT) 신화의 아버지 마윈 알리바바 회장을 끌어내렸던 수법과 일치된다.

라인 사태와 미중 사이의 틱톡 매각 논란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제정한 이른바 ‘틱톡금지법’에 분명한 근거를 두고 매각을 요구했다. 일본의 행정지도는 법률 근거가 없고 권한과 범위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일본으로선 스스로 문명국가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디지털 공간은 단순한 인터넷상의 정보 교류를 넘어 국가의 주권,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영역이다.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라인 사태’는 한국의 디지털 주권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사건이다.

기술·경제 주권 전쟁에선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다. 일본에서 우리 플랫폼 기업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만사 제쳐 두고 싸워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일본 정부의 부당한 압박은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 진출 역량과 디지털 주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네이버 역시 단순한 기업 이익을 넘어 디지털 전쟁의 최전선에 있다는 의지를 갖고 적극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외교적 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부당한 압박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국제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개인정보 보호와 인터넷산업 보호라는 명분 뒤에 숨겨진 경제적 압박과 경영권 강탈 시도를 국제사회에 전달해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글로벌 디지털 시장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있는 현안이다. 디지털 주권을 위협하는 외국 정부의 부당한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 정치권 역시 라인 사태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지 말고 초당적 대응으로 국익을 지키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오일만 세종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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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세종취재본부장
오일만 세종취재본부장
2024-05-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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