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甲과 乙의 서비스/전경하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甲과 乙의 서비스/전경하 경제부 차장

입력 2013-05-24 00:00
업데이트 2013-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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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하 경제부 차장
전경하 경제부 차장
얼마 전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는데 판촉사원이 와서 말을 걸었다. 지금 고르는 물건의 프리미엄급이 가격 할인돼 더 싸니 그걸 사라는 귀띔이었다. 실제로 프리미엄급 제품의 값이 더 쌌다. 물건을 집어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직원은 다른 신상품을 팔고 있었다.

한 시중은행에서 마이너스 신용대출을 15년가량 쓰고 있는데 최근 금리인하를 받았다. 매년 연장해 왔지만 연장 시점에 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3% 포인트 가깝게 금리가 내렸다. 2009년 상담할 때 금리가 올라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4년간 잊고 지낸 결과다. 매년 내 연봉은 작게라도 오르고, 거래 실적은 쌓여만 갔으니 그 중간에 금리가 내릴 수 있다고 말해주었을 법도 한데….

지나친 기대를 한 것이다. 개인의 변동금리 대출에 금리 인하 요구권이 허용된 것은 2003년부터다. 오죽 은행들이 알리지 않았으면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영업점에 고시를 하도록 했을까 싶다. 금리를 내리면서 담당 직원은 요즘 파는 주택청약통장 가입을 권했다. 한 달에 몇 만원만 들면 된다는 부연 설명도 했다. 40대인 내가 주택청약통장에 가입하면 그걸 언제 써먹을 수 있을까.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하우스푸어’라며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졌다. 까다롭지 않거나 금융지식이 별로 없는 고객에게 이런 식의 제안을 했다면 아마도 가입해야 하는 걸로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은행은 상대적으로 금융 지식이 적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농촌에 점포들이 많다는 생각에 기분이 씁쓸해졌다.

이른바 ‘갑’(甲)으로 통하는 대형 마트에 ‘을’(乙)인 제조업체의 판촉사원이 파견돼 서비스업을 했다. 은행 직원은 서비스업이 본업이다. 하지만 고객을 위한 서비스는 판촉 사원이 더 잘했다. 두 직원 모두 본사의 실적 할당에 의해 일했는데 고객에게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고객을 보는 시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제조사는 대형 마트의 다양한 상품 중 자사 상품을 골라주는 소비자가 참 고맙다. 제조사는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소비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소비자가 갑이다.

반면 은행의 경우, 소비자(고객)는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았다면 자신을 을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은행은 고객을 위해 치열한 고민을 덜 한다. 공공의 울타리가 있어 진입 장벽 또한 높으니 경쟁도 다른 산업보다 덜하다. 고액 자산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은행에 기분 좋은 서비스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한편으론 서운하다. 그동안 ‘공적자금’이라며 들어간 세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면 행동을 바꿔보자. 우리가 받는 서비스에는 우리가 기여한 측면이 크다. 막연히 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말고 이제는 요구하자. 귀찮아도 물어보고 따져보고, 싫으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자. 자신을 갑이라 생각하는 공급자에게는 까칠한 수요자가 되는 것이 을의 대접을 벗어나는 첫번째 길이다.

세상도 변했다. 공급만 하면 수요가 창출되던 시대에서 수요에 맞춘 공급이 승자가 되는 시대다. 기업보다 가계와 개인이 은행의 주요 고객이 된 지 오래다. 주요 고객으로서의 지위를 누려보자. 너도나도 금융소비자 보호를 외치는 지금이 서비스의 관계를 바꿀 수 있는 적기다.

lark3@seoul.co.kr

2013-05-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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