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성폭행 저질러” 참회의 유서…법원 판단은

“15년 전 성폭행 저질러” 참회의 유서…법원 판단은

김소라 기자
김소라 기자
입력 2024-05-07 13:31
업데이트 2024-05-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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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집단 성폭행” 자백 유서
공범 3인 실형 선고받았지만
대법 “유서 증거로 인정 안돼” 원심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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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자료 이미지. 서울신문DB
법원 자료 이미지. 서울신문DB
“너무나 죄송합니다….”

지난 2021년 3월,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남성이 남긴 유서에는 15년 전 저지른 집단 성폭행에 대한 자백과 참회가 담겨 있었다. 이 남성은 유서에서 함께 범행에 가담한 친구 세 명의 이름도 폭로했다. 경찰은 이 남성과 친구들이 지난 15년 동안 비밀로 묻어뒀던 범죄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진 친구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남성의 유서가 증거 능력이 부족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남성 3명에게 각각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달 12일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남성들이 재판에 넘겨진 건 친구인 A씨가 남긴 유서 때문이었다. 3년 전 숨진 A씨는 유서에서 2006년 이들과 함께 중학생 후배에게 술을 먹이고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A씨의 유서를 바탕으로 유서에서 공범으로 지목된 친구 3명에 대해 수사를 벌였다. 사건 당일 피해자의 행적이 A씨의 유서 내용과 부합했으나, 3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2021년 12월 이들을 특수준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의 쟁점은 이미 사망한 A의 유서를 형사재판의 증거로 쓸 수 있는지였다. A씨가 사망해 재판에서 직접 진술할 수 없는 상황에서, A씨가 남긴 유서는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 아래 쓰였다는 점이 증명돼야 증거로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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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서울신문 DB
법원. 서울신문 DB
1심은 유서를 증거로 쓸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법원은 유서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들 3명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15년 전의 사건을 유서에 기재하면서 진실만을 담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유서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A씨가 피고인 3명에 대한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A씨가 유서에 진실만을 기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A씨의 기억이 과장 또는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 유서 내용이 불분명해 공소사실을 구성하기 부족한데다 일부 내용은 피해자의 진술과 다른 점도 대법원은 고려됐다.

대법원은 “유서 내용이 법정에서의 반대신문(피고인 측이 증인을 신문하는 절차) 등을 통한 검증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신빙성이 충분히 담보된다고 평가할 수 없다”면서 “망인에 대한 반대신문이 가능했다면 그 과정에서 구체적, 세부적 진술이 드러나 기억의 오류, 과장, 왜곡, 거짓 진술 등이 드러났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3명의 유죄 여부는 서울고법에서 판단하게 된다. 다만 A씨 유서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이들은 처벌을 피해갈 가능성이 크다.
김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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