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삼성서울병원, 사실관계 파악 후 행정처분 검토”…면허정지 등 관련 규정 있지만, 수술실 위법행위 적발 어려워
지난해 12월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버젓이 생체실험이 자행되고 있다’는 다소 자극적인 내용을 담은 논평을 발표했다.환자와 보호자를 속인 채 약속된 의료진이 아닌 다른 사람이 수술하는 ‘대리수술’(유령수술)이 서울 강남 일대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빗댄 지적이었다. 의사회는 당시 A 성형외과를 대리수술이 이뤄진 곳으로 지목하며 법적 소송을 냈고, 이 소송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그로부터 약 7개월이 지난 후 이번에는 국내 굴지의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다른 의사에게 대리수술을 맡긴 산부인과 김 모 교수가 병원 자체 조사를 거쳐 무기정직 처분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 이후 사회 이슈로 크게 부각된 대리수술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의료계와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정부와 사법기관 등이 일벌백계(一罰百戒)한다는 각오로 대리수술 사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의료인부터 비의료인까지 ‘대리수술’ 천태만상
27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대리수술 형태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의사가 비의료인에게 수술을 맡기는 경우 ▲ 원로급 교수가 후배 교수(펠로우 등)에게 시키는 경우 ▲ 지도교수가 전공의에게 수술실습을 시키는 경우 등이다.
이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대리수술은 의료인 면허가 아예 없는 사람이 수술을 총괄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줬다. 올해 1월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인공관절 수술에 참여한 사실이 경찰에 적발돼 처벌을 받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제품을 팔기 위해 영업사원이 의료진에게 용도, 시술 방법 등을 직접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실제 환자의 수술에 직접 나서는 ‘베테랑’ 영업사원도 있다”고 귀띔했다.
두 번째 대리수술 사례는 이번 삼성서울병원에서 적발된 것처럼 해외학회 참석, 수술일정 과다 등을 핑계로 중견 이상의 교수가 후배 교수에게 수술을 도맡기는 경우다.
또 지도교수가 전공의를 대상으로 교육하는 도중에 일부 시술을 맡기는 것도 환자와 보호자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리수술로 간주할 수 있다.
한 전공의는 “교육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대리수술 형태”라며 “단, 지도교수가 철저한 관리·감독을 한다는 점에서 다른 대리수술과 동일 선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대리수술은 환자와 보호자 기만행위
대리수술은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수술 후 부작용 발생 시 책임소재가 모호해진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중론이다.
서울 소재 A 대학병원 교수는 “의료진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에 관해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고 이를 어긴다면 양측 간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설명의무에 미흡한 점은 의료법에도 저촉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황만성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대한의료법학회·검찰 공동학술대회에서 “환자가 수술을 받은 후 신체적 장애가 생긴다면 상해죄의 범주로 볼 수 있으므로 대리수술은 형사법상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의학은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전문 분야라는 점에서 대리수술은 사기죄 구성 요건에도 부합한다”며 “대리수술에 관여한 사람은 모두 비슷한 혐의 적용이 가능하므로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대리수술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처벌 기준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대한성형외과의사회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박영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기획이사는 “대리수술의 문제점을 의료계 내부적으로 알리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자정작용을 벌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법률적 처벌 규정이 더욱 명확해져야 대리수술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복지부, 관리인력 한계 호소…“삼성서울병원, 사실관계 파악 후 행정처분 검토”
현재 의료법 제66조에는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하는 행위를 하거나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료행위를 하게 하면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보건복지부는 대리수술이 위 조항에 저촉되므로 관할 보건소 등에서 신고가 접수되면 사실관계 파악 후 처벌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복지부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대리수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 모 교수에 대해서도 관할 보건소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행정처분을 검토할 예정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대리수술이 수술실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내부 고발자가 없으면 적발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국에 약 9만개 의료기관이 있는데 여기에서 벌어지는 대리수술을 모두 찾아내기란 관리인력의 한계가 분명히 있다”며 “삼성서울병원의 경우도 내부 징계조치 외에 밝혀진 사항이 없어 행정처분 여부를 지금 당장 결정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인 보수교육 이수에 윤리의식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의료인들이 대리수술의 문제점을 반드시 공감하고 이 같은 위법 행위를 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리수술을 막기 위해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의사의 실명과 전문·진료 과목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하도록 이번 달 12일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또 대한의사협회에서도 대리수술 때문에 의료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이번에 적발된 삼성서울병원 교수의 경우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라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대리수술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지속해서 벌여나가겠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