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대상인으로 자처한 화신은 수백곳에 이르는 전당포와 은행 격인 은호(銀號)를 소유하며 동인도회사, 대외무역 독점기관 광동십삼행(廣東十三行)과 거래를 터 사복을 채웠다. 덕분에 화신은 18세기 세계 최고의 부자에 등극했다. 건륭제는 사돈을 너무 총애한 나머지 그의 부패를 모른 체했고 조정 대신들은 두려워 고발하지 못했다. 건륭제가 붕어하자 그의 국정농단을 곁에서 지켜본 가경제(嘉慶帝)가 죄목 20개항을 선포하고 집을 압수수색했다. 압수한 백은(白銀)이 자그마치 8억냥에 이른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 담당하던 부국 청나라의 연간 조세수입은 7000만~8000만냥에 지나지 않았다. 화신이 청나라 조세수입 10년치를 꿀꺽한 것이다.
화신이 탐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관료제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수나라 때부터 귀족제의 폐해를 없애려고 개인 능력을 보고 관리를 등용하는 과거제를 실시했다. 과거 급제는 돈과 권력,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쥐는 티켓이었다. 과거 급제자를 내려고 온 집안이 매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과거 급제자는 희생한 가족에게 보답해야 했다. 그러나 관리의 봉록은 형편없었다. 황제는 세금을 줄여 주는 게 선정(善政)을 베푸는 척도로 여겼다. 나라 곳간은 비었고 관리들은 녹봉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관리들은 각종 뒷돈을 받아 배를 불렸다. 벼슬을 얻으면 곧 재물이 생긴다는 ‘승관발재’(升官發財)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당나라 때 측천무후(則天武后)도 과거 급제자에게 일일이 ‘승관발재’를 축하해 줬다는 얘기도 있다.
20세기 신해혁명으로 왕조시대는 무너졌지만 부패만큼은 좀비처럼 살아남았다. 국공내전기 군벌의 부패는 말할 것도 없고 월등한 군사력을 지녔던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난 것도 관리들의 부패 때문이다. 너무 가난해 부패할 수 없었던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를 지나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부패는 시나브로 고개를 들었다. 왕조시대엔 과거 급제가 관리의 조건이었다면 21세기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를 나와 공산당원이 되는 게 지름길이다. 당원이 돼 관리가 되기만 하면 ‘눈먼 돈’은 사방에 널려 있고….
중국에서 지난 9월 한 달 부정부패 혐의로 1만 7000여명의 관리를 처벌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직무유기 등 관료주의 사례 6760여건이 적발돼 1만여명이 처벌받았고, 뇌물수수·공금유용 등 부패 사례 5160여건에 7200여명이 징계받았다. 2012년 최고 지도자에 오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취임 일성으로 반부패운동을 높이 외쳤다. 당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을 지낸 저우융캉(周永康) 등 ‘호랑이’와 지방 말단 관리인 ‘파리’까지 8년 동안 무자비하게 때려잡았으나 부정부패는 끊이질 않는다. 중국의 부패가 없어지기를 기대하기보다 황하(黃河)의 황토물이 맑아지기를 바라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khkim@seoul.co.kr
2020-11-0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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