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성실함, 대안이 없음을 고백하는 용기, 추상적 도덕이 아닌 현실적 차선을 선택해 가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김근태기념도서관에 새겨진 이 글귀는 말과 글의 극단 시대에 던지는 화두다. 과장된 역할의 포로가 되지 말라는 뜻으로.
해마다 12월이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눈이 내리든 해가 빛나든 모란공원에 모인다. 보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할 텐데, 후배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묘하다. 10주기를 기념하면서 “10년 지난 후/날이 밝을수록/날이 흐릴수록/김근태”라고 정한 이유는 그런 마음과 이어져 있을 것이다.
신념보다 그의 삶이 민주주의에 가까웠다. 타인과 스스로를 지키고자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이가 극단의 언어를 사용할 줄 몰랐던 것은 특별한 일이다. 독한 상처를 따뜻한 마음으로 치유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혐오와 차별, 증오와 편견이 사회의 인프라가 돼 버린 지금 더 뼈저리게 느껴진다.
“내가 틀렸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때다. 코로나 2년, 나는 두 해를 하루같이 일했지만 준비되지 못했고 많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방법을 아는 우리가 13세기 페르시아의 수피즘 시인 잘랄 앗딘 루미의 ‘상처는 빛이 당신에게 진입하는 통로다’란 표현처럼 서로 다독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측 불가의 2021년에 그가 보낸 메시지는 선언과 구호가 아니라 존중과 배려의 신호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일 먼저 싸우고, 가장 마지막까지 견디면서도 늘 ‘미안하다’고 고개 숙이던 사람. 김근태, 그가 그립다.
2021-12-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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