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의 언파만파] 결혼과 혼인

[이경우의 언파만파] 결혼과 혼인

이경우 기자
입력 2020-11-01 20:36
수정 2020-11-02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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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결혼’을 한 뒤 행정기관에 알리는 일은 ‘혼인신고’다. ‘결혼’을 했는데 ‘결혼신고’라 하지 않고 ‘혼인신고’라고 한다. 일상의 말에서는 ‘결혼’이 대세지만, 행정기관에 신고할 때는 ‘혼인’이 굳어져 있다. ‘결혼신고’는 어색하게 들리는 표현이 됐다.

그렇다고 ‘혼인’이 더 공적이거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국어사전의 뜻풀이에서도 두 낱말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표준국어사전에는 ‘결혼’이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이라고 돼 있다. ‘혼인’은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이다.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따르면 두 낱말은 완전히 동의어다.

하지만 쓰임새를 보면 ‘혼인신고’를 ‘결혼신고’로 대체하기 어렵듯이 ‘결혼’과 ‘혼인’은 항상 동의어 관계에 있지는 않다. 연애에서 출발해 부부가 되는 것은 ‘연애결혼’이라 하고, 국적이 다른 남녀가 부부가 되는 것은 ‘국제결혼’이라고 한다. 여기서 ‘결혼’ 대신 ‘혼인’을 넣으면 아주 낯설어진다. ‘연애혼인’이란 말은 애초 생기지도 않았었고, ‘국제혼인’은 낯설게 쓰이다 말았다. 누구도 ‘결혼반지’를 ‘혼인반지’라고 하지 않는다.

‘결혼’과 ‘혼인’은 조금 다르게 쓰였었다. ‘결혼’은 본래 결혼하는 남녀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쪽 집의 아버지가 상대 집의 아버지와 ‘결혼했다’는 말도 가능한 표현이었다. 이후 지금처럼 변해 왔다. ‘혼인’은 애초부터 결혼하는 당사자에게만 쓰는 말이었다.

한데 광복 직후 하나의 오해가 있었다. 광복이 되자 정부는 일본말의 잔재를 없애고 우리말을 찾는 정책을 활발히 펼쳤다. 문교부는 1948년 ‘우리말 도로 찾기’라는 국민 교육용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쓰이는 ‘적자, 안내, 취소, 회람’ 같은 말들이 버려야 할 일본식 한자어로 올랐다. 뿐만 아니라 ‘결혼, 애매, 입장’도 일본식 한자어로 지목됐다. 그렇지만 ‘결혼’이나 ‘애매’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였고, 우리가 오랫동안 써 오던 말이었다. ‘입장’은 일본식 한자어였지만 중국에서도 받아들여진 낱말이었다.

일부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살피지 않고 일본식 한자어 목록을 작성한 것이다. ‘결혼’이나 ‘애매’는 순화 대상에서 빠졌지만, 이때의 기록과 이후 국어순화운동 바람을 타고 ‘일본색’이 묻은 꺼림칙한 말로 오해받기도 했다. ‘결혼’ 대신 ‘혼인’이라고 써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됐었다. 일부에선 여전히 그런 것으로 잘못 알고 전하기도 한다. 모든 지침에는 신중이 최고 덕목이다.

wlee@seoul.co.kr
2020-11-0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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