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恨’ 희극으로 풀고 싶었다”

“‘5·18의 恨’ 희극으로 풀고 싶었다”

입력 2012-04-24 00:00
수정 2012-04-24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연극 ‘푸르른 날에’ 연출 고선웅

TV 브라운관 예능계에 톡톡 튀는 MBC 김태호 PD가 있다면 연극계엔 고선웅(44) 연출이 있다. 연극계에서 그가 만든 작품은 특유의 웃음이 있고, 다른 연출가들이 만들어낸 작품과는 전혀 다른 독특함과 차별성을 지녔다. ‘고선웅 연출’의 작품이란 이유만으로도 돈을 지불하고, 티켓을 사 관람하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다.

고선웅 연출만의 색깔은 분명하다. 연극 무대를 1평도 낭비없이 사용하면서도 세련되게 공간을 활용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발휘해 대중들과 쉽게 호흡한다.

특히 그가 연출한 작품 속 배우들은 마치 속사포 랩을 하듯 빠른 속도로 대사를 쏟아내며, 특유의 억양으로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이러한 색깔은 그가 대표로 있는 극단 ‘마방진의 스타일’로도 불린다.

이미지 확대
고선웅 연극 연출가
고선웅 연극 연출가
●특유의 유머 대중들과 쉽게 호흡

고선웅 연출이 지난해 신시컴퍼니와 손잡고 초연한 연극 ‘푸르른 날에’를 다시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올린다.

‘푸르른 날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피해자와 가해자, 방관자 모두를 조명한 연극으로, 5·18 이후 30년 만에 만난 남녀의 사랑과 과거의 기억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푸르른 날’에는 지난해 초연 당시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과 연출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물론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하는 ‘베스트 3’ 작품에도 뽑히는 등 호평을 받았다.

지난 20일, ‘푸르른 날에’ 앙코르 공연 첫날, 남산예술센터에서 고선웅 연출을 만났다. 그는 그의 작품이 재공연되는 것과 관련, “연출에게 자기의 작품을 재공연하자는 것만큼 기쁜 게 어디 있겠느냐.”면서 “연극은 노동집약적인 것이라 매번 업그레이드하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 ‘푸르른 날에’는 내용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지난해 초연 공연 직전까지만 해도 ‘푸르른 날에’가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도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거란 생각, 전혀 없었다. 그저 주제가 무겁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가 있기에 중간에서 지혜롭게 풀어가자는 생각이 많았다. 실수해선 안 된다는 걱정이 컸다.”

●좌우 이야기가 아닌 중간의 이야기

그는 ‘푸르른 날에’를 만드는 과정에서 방관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그는 “좌우의 이야기가 아닌 중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5·18 과정에서 방관자들이 분명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원래 더 무서운 거다. 시국이 무서운 상황에서 우국지사처럼 목숨걸고 나설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방관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 ‘이제는 좀 편해지자. 5·18에 대한 상처와 아픔, 이제는 그만 놓자. 풀자. 괜찮다.’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강조했다. “나는 재미없는 칙칙한 걸 정말 싫어한다. 칙칙한 게 싫고, 특히 이념을 다룬 작품은 특유의 거룩함 같은 게 불편했다. 그래서 ‘푸르른 날에’ 배우들의 말투도 특이하게 했다. 평범하게 말하는 것, 재미없지 않은가?”

●남산예술센터서 새달 20일까지 공연

그의 살아온 이력 또한 특이하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기엔 그가 얻은 점수가 다소 높았다.

연극영화과랑 비슷한 학과라 생각해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웬걸. 너무 다른 학문에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대학시절 열정을 불살랐다고. 그러다 동아리 선배 한명의 ‘광고는 60초짜리 영화다.’라는 말에 반해 광고회사에 들어갔지만 성격상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그만 뒀다고. “사람들이랑 잘 안 맞았어요. 연극만 해서 그런지, 사회생활이 재미없었죠. 재미없는 사람들 딱 질색이거든요.” 그렇게 그는 다시 연극으로 돌아왔고, 연극계 개성 넘치는 한 명의 연출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색깔이 듬뿍 녹아든 연극 ‘푸르른 날에’는 5월 20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2만 5000원. (02)758-2150.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2012-04-24 1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