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이 건강과 미용의 적이라는 인식은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반세기 전만 해도 섭취량이 생활과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설탕은 식재료 이전에 약재로 맹활약했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이슬람 과학 수준이 유럽을 앞섰는데 설탕을 약재로 두루 활용한 덕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도 결핵 치료에 썼다는 기록이 있다. 귀한 세공품으로 국왕이나 귀족 파티를 장식하기도 했다. 웨딩 케이크의 기원이라니 사치재로서도 한몫을 했다.
포식의 시대. 설탕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규정하면서 세계 각국이 가공식품에 설탕세를 부과하는 추세다. 호주,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설탕세 선도국으로 분류된다. 일본은 2009년 ‘비만금지법’을 도입했다. 일부 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종사자들이 비만이면 벌금을 물린다. 백악관 시절부터 비만 대책에 관심이 높았던 미국의 전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최근 아예 어린이 비만 퇴치를 위한 식음료 회사를 차렸다. 설탕을 어떻게 잘 ‘규제’하느냐가 국격의 최신 척도가 되는 중이다.
우리도 그 대열에 편입할 때가 됐는지 모르겠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탕후루 프랜차이즈 대표를 다음달 12일 국정감사장에 부르기로 했다. 설탕을 겹겹이 입힌 과일 꼬치 탕후루는 요즘 학교 주변 어딜 가나 선풍적 인기다. 6년 전 울산에서 1호점이 나온 뒤 지난해 폭발적으로 늘어 현재 전국에서 420여개 매장이 운영된다고 한다. 국회가 탕후루 최대 업체에 소아비만의 잠재적 책임을 미리 경고하겠다는 셈이다.
소아비만을 방치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과 ‘기업할 자유’가 있는 기업에 대놓고 따지겠다는 사회적 책임. 어느 쪽이 우선인지, 국회가 지금 소비자들을 난데없는 ‘설탕 전쟁’에 빠트려 놨다.
2023-09-28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