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中서열 1·2위 시진핑·리커창과 연쇄회담…‘관계복원’ 공식화文대통령 “비 온 뒤 땅 굳어”…習 “좋은 시작” 李 “훨씬 따뜻한 봄 맞을 것” 全분야 관계 정상화의 길 약속…文대통령 내달 방중 정상회담 ‘결정체’‘봉인된 사드 뇌관’ 점화 개연성 ‘잠복’…복잡한 주변강국 ‘3不’ 이슈 여전경제·관광·문화 등 ‘사드보복’ 적극적 해제 관건은 ‘中 의지
문재인 대통령의 첫 동남아순방 최대 성과는 ‘한중관계 복원’을 정상 차원에서 공식화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우리 경제 상황과 한반도 상황을 고려하면 적어도 안보·경제 분야에서만큼은 중국을 빼고 생각할 수 없기에 한중 정상이 무릎을 맞대고 ‘사드 앙금’을 적잖이 털어냈다는 점에서 외교적 성과로 평가받기에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한·중 양국은 ‘10·31 사드 합의’로 서로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봉인’하고 관계 정상화의 길로 나서기로 해, 양국관계 해빙은 예정된 수순으로 인식된 게 사실이다. 한중 정상 간의 만남은 이를 확인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7박 8일에 걸친 동남아 순방의 초점은 11일 시 주석과의 만남이 이뤄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베트남 다낭에 맞춰졌다.
지난 7월 6일 독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계기의 첫 정상회담 이후 넉 달 만의 회동이어서 그 결과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
시 주석은 7월 이후 핵실험과 수차례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잇따른 고강도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문 대통령의 소통 요구를 사실상 거부해 왔다.
하지만 더는 ‘빙하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사드 봉인’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활로가 열렸다.
주목할 부분은 두 정상의 50분 회동이 단지 사드 봉인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정상궤도로 올리자는 데로 의견이 모였다는 데 있다.
시 주석은 “우리 회동은 앞으로 양국관계 발전과 한반도 문제에 있어 양측이 협력과 리더십 발휘에 있어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중한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관건적 시기에 있다”며 “새로운 출발이고 좋은 시작”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한국 속담과 ‘매경한고’(梅經寒苦·봄을 알리는 매화는 겨울 추위를 이겨낸다)라는 중국 사자성어를 거론하며 “한중관계가 일시적으로 어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서로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수 있게 양측이 함께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두 정상의 언급에는 한중관계를 조속히 정상화하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겼고, 이는 사드 배치 발표 이후 16개월 동안 얼어붙었던 한중관계를 녹이는 계기가 됐다.
두 정상의 만남은 문 대통령의 12월 방중 정상회담이라는 결정체를 낳은 데 이어 각급 차원의 전략대화를 강화하자는 데까지 진전됐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을 만난 지 이틀 만인 13일 사실상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리커창 총리를 만나 양국관계 정상화의 길에 쐐기를 박았다.
시 주석이 참석하는 APEC 정상회의와 리 총리가 참석하는 아세안+3 정상회의 및 EAS(동아시아정상회의)가 동남아 인접 국가에서 잇따라 열리면서 문 대통령이 중국 서열 1·2위와 연쇄 회담할 여건이 조성됐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확인한 정치·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해빙 기조를 리 총리와의 만남에서 구체화하면서 적지 않은 실리를 챙겼다.
문 대통령은 리 총리와의 52분 간 회동에서 ‘사드 보복’의 산물로 여겨진 중국 내 우리 기업이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제외 철회와 한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수입규제 철회를 요청했다. 또 양국에 개설된 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발전과 양국 금융협력 분야의 속도감 있는 추진과 미세먼지에 대한 공동대응도 제안했다.
관계 정상화라는 정상 간 ‘선언’을 넘어 사실상의 경제 보복 조치를 거론하며 이에 대한 ‘정상화’를 가감 없이 요구한 셈이다.
리 총리는 “양국 간 실질협력 전망은 아주 밝다”, “중한 관계의 미래를 자신할 수 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훨씬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 등 한중관계의 본궤도 진입이 목전에 있음을 시사했다.
한중 양측은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기조도 재확인했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중국 최고 지도자와의 연쇄회담은 양국관계의 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한반도 최대 이슈인 북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키웠다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14일 순방 동행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시 주석, 리 총리와의 연쇄 회담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양국 간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새로운 출발에 합의했고, 연내 방중을 초청받고 수락했다. 다음 달 방중이 양국관계 발전에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중관계의 해빙기가 온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현재 보이는 성과에만 마냥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31 합의에 따라 청와대는 정상회담에서 사드 이슈가 ‘잠복’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 주석은 사드 ‘우려’를 언급하는 등 중국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문 대통령 역시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재차 설명하면서 반박했음은 물론이다.
물론 사드 합의가 양국이 서로에 대한 입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묻어둔 채’ 미래를 얘기하자는 것이었고, 정상회담에서도 그 이상 확전되지 않고 ‘관계 정상화의 길’을 모색했지만 복잡한 한반도 주변 상황을 감안하면 향후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언제라도 사드 뇌관이 타오를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이번 연쇄회담에서는 우리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복원 추진 과정에서 밝힌 ▲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들어가지 않으며 ▲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3불(不)’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의 안보전략에 따라 이슈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는 대중(對中) 관계의 선을 넘어 미국과의 관계까지 함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폭발력이 잠재된 사안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해 사드 보복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경제·관광·문화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해빙 기류는 분명하지만, 단기간에 회복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당국이 얼마나 실질적인 조처를 하느냐에 따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 총리는 전기차 배터리 문제와 관련해선 “중국 소비자들의 관심, 안전문제 등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고, 한국산 제품의 반덤핑 문제 제기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말해 즉답을 피했다. 우리 정부의 실질적인 대중 협상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