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유가족 경찰청 방문 항변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언니는 고개를 떨군 채 눈물만 훔쳤다. 슬픔으로 말문이 막힌 모녀를 대신해 이모가 입을 열었다. “두 번 죽였다. 112 신고센터가 그랬고, 경찰이 그랬다. 국민의 믿음을 다 죽였다.” 유가족의 절절한 항변이 경찰청 9층 접견실을 메웠다.지난 1일 경기 수원에서 발생한 조선족의 20대 여성 납치살해사건 피해자 유가족들이 이날 오전 10시 50분쯤 경찰청을 방문, 조현오 청장을 만났다. 조 청장은 바로 직전에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피해자 A(28·여)씨의 외삼촌 정모씨는 “(경찰이) 장례식장 와서 조문도 안 했다.”면서 “이런 사람들 대기발령 낸 뒤 조용해지면 다시 복직시킬 것 아니냐.”고 흥분한 어조로 따졌다.
조 청장은 “내 책임이다. 조사결과에 따라 파면도 시키고, 구속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상응한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이다. 10명이 넘을 가능성도 있다.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 파면, 해임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유족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피해자의 이모는 “어떻게 (살려달라는) 신고전화를 받으면서 부부싸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며 울먹였다.
-유가족:발표자체를 믿을 수 없다. 양파 껍질 벗기듯 계속 다른 얘기를 하지 않나. 경찰이 경찰을 감찰하는 그 자체를 믿을 수 없다. 발표 때마다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나.
-유가족:사건이 났는데 남의 집에 못 들어가나. 사람이 죽어간다고 소리치는데 책임자들은 졸고,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나. 경찰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게 썩어서 검찰에 무시당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 간다는데 어디냐고 묻고… .
-유가족:112에서 접수신고하게 되면 위치추적하나.
-조 청장:한다. 112신고센터 직원, 팀장이 너무 잘못했다. 신고를 받으면 우선 신고한 사람 위치를 확인한다.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기지국을 통해서 위치를 확인한다. 반경 20m까지 확인할 수 있다. 또 스마트폰 같은 경우에는 2~3m까지 구체적으로 추적가능하다. 팀장이 좀 제대로 안 챙긴 그런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
-유가족:애초 제대로 할 수 있는 시스템, 모두 있는데도 못했다는 거 아니냐. 제대로 했다면 우리 조카 살릴 수 있었다는 거 아니냐.
-조 청장:우리 책임이 정말 크다.
-유가족:답답하고 울분이 터진다. 처음에는 별로 관심도 없다가 형식적인 수사만 하다가 아침 8시 전후로 해서 죽은 조카 아이 휴대전화로 전화했더니 “여보세요. 여보세요.”라고 한 뒤 끊었다고 하더라. 언니가 경찰서로 전화해서 위치추적해야 한다고 하니까 경찰은 “동생 죽이고 싶냐. 빨리 119가서 위치추적해 달라고 했다.”더라. 119센터에서 위치추적해 나온 위치가 제일교회 옆 여울아파트 기지국이다. 현장에 가 봤다. 사건현장에서 얼마 안 떨어졌더라. 기지국 얘기하니까 그 이후부터 수사를 시작했다. 그 전에는 우왕좌왕하다가.
-조 청장:시스템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대처한 그런 부분, 책임 통감한다.
-유가족:두번 죽인 것이다. 경찰 측에서 112신고센터에서 우리 믿음을 죽였다.
-조 청장:할 말 없다.
-유가족:그 전화 받으면서 부부싸움한다고 생각하나. 어떻게 남편한테 아저씨라고 하면서 부부싸움하나.
-조 청장:정말 잘못됐다. 어떤 이유라도 변명이 안 되는 저희 경찰이 무성의하고 무능하다.
-유가족:현장 검증도 최소한 통보없이 했다. 시신을 병원에 안치하고 책임자가 누구냐 물었더니 ‘과장님 오면 보고할 테니 병원가서 기다리라.’고 하더라.
-조 청장: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계속 속이고 은폐하고 거짓말한 것, 송구스럽다.
40여분이 지나 조 청장이 떠난 후에도 유가족들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유가족은 “서장 물러가니 다음 서장 온다고 꽃다발 늘어놓고 이·취임식 하더라. 이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2012-04-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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