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노부부 살인 피의자 “아래층 배려하지 않아 홧김에 범행” “자기중심성 강해져 작은 피해도 못견뎌…공동체의식 회복해야”
경기 하남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모(33)씨는 위층 A(67)씨 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몹시 거슬렸다.아파트 경비실을 통해 “주의해달라”고 말하기도 하고 직접 집에 찾아가 “조용히 해달라”라고 요구했지만, 김씨 기준에서 위층에서 전해지는 소음은 멈출 줄 몰랐다.
특별한 직업 없이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며 폐암에 걸린 어머니를 병간호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김씨는 결국 층간소음 문제로 쌓인 분노를 극단적으로 표출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지난 2일 오후 5시 50분 부모님과 함께 살던 여동생이 집을 잠시 비운 틈을 타 흉기를 들고 무작정 윗층 A씨 집으로 찾아가 A씨 부부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팔과 옆구리를 찔린 A씨는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태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복부를 심하게 다친 A씨 부인(66)은 숨졌다.
당일 층간소음 문제로 서로 간 직접적인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위층 부부가 이사 온 1년 전부터 불만을 억누르고 있던 김씨가 순간적으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범행 직후 도주했다가 지난 3일 밤 인천의 한 사우나에서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층간소음 문제에 대해 경비실을 통해 위층에 얘기하면 조금이라도 시정을 해야 하는데 ‘알았다’고 대답만 해놓고 번번이 무시했다”며 “아래층을 배려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가족들은 “주말이 되면 위층에서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들렸는데 A씨 부부의 손자·손녀가 놀러 와 층간소음이 났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층간소음이 이웃 간의 감정싸움을 넘어 강력범죄로 비화하는 경우가 잦아지자 일각에서는 건축법을 개정해 층간소음을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일부 건설사는 층간소음을 해결하고자 다양한 특화설계를 내놓고 있으며, 경남도의회나 부산시의회 등 지자체도 ‘층간소음 방지조례’를 제정하는 등 제도마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층간소음 갈등’ 기사를 접한 누리꾼들도 “단독주택보다 공동주택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나라에서 층간소음이 아예 안 나게 짓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라며 “정부가 아파트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건축법이 강화되고 건물이 잘 지어지더라도 ‘이웃 간 배려’가 기본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층간소음 분쟁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다른 누리꾼들은 반박했다.
한 인터넷 포털 아이디 ‘ycmo****’는 “건축 아무리 잘해도 위층에서 뛰면 아무런 소용없다”라며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아래층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아이디 ‘sama****’는 “층간소음 가해자가 정중하고 미안한 태도로 나오면 극단적인 결과까지는 초래하지 않는다”면서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가해자가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 누리꾼은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피의자가 살인은 저지른 건 잘못된 일이지만, 층간소음에 시달려본 입장에서 그가 겪었을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층간소음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3자가 개입하는 법이나 조례안을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배려’하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층간소음으로 빚어진 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성향 탓”이라며 “3자가 개입하는 법이나 조례안을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는 부분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 조심하도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미아 단국대 상담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이 약화하고 자기 중심성이 강해지다 보니 내 영역 외에 다른 부분에서 피해를 보게 되면 조금이라도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아파트도 사회 일부분으로서 주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면 김씨 사건과 같은 극단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서 교수는 미국 아파트 주민들의 모임을 예로 들며 이웃이 서로 배려를 하게 만들려면 개인에게 모든 의무를 지우기보다는 구조적으로 접근할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엿다.
그는 “미국의 많은 주택밀집 지역이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음식을 나누며 소통한다”라며 “우리나라처럼 안건이 있어야 만나는 입주민회의가 아닌 순수하게 친목활동을 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쌓는 건데 우리도 이들의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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