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선 사장 사건...운전기사의 ‘입’과 재벌회장의 ‘갑질’

정일선 사장 사건...운전기사의 ‘입’과 재벌회장의 ‘갑질’

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입력 2016-07-27 10:44
수정 2016-07-2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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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 진술, 비리 규명 결정적 역할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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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 갑질 매뉴얼 논란에 휘말린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
운전기사 갑질 매뉴얼 논란에 휘말린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 지난 3월 고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5주기 제사에 참석한 정일선 사장. 2016.4.8 연합뉴스.
재벌회장, 정치인 등 거물급 인사를 근거리에서 수행하는 운전기사. 하지만 운전기사의 폭로로 거물급 인사들은 폭언, 폭행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하고, 비리가 밝혀져 철장 신세를 지는 경우도 있다.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은 지난 3년간 운전기사 61명을 주 56시간 이상 일하도록 하고, 이들 가운데 1명을 폭행한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를 적용해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7일 밝혔다. 현대가 3세인 정 사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넷째 아들인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장남이다.

정 사장이 만든 A4용지 140여장 분량의 매뉴얼에는 모닝콜과 초인종 누르는 시기·방법 등 일과가 촘촘히 규정돼 있다. 운전기사가 매뉴얼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폭언과 폭행을 했고, 경위서를 작성토록 했다. 고용부 조사 결과 정 사장의 운전기사는 한 사람당 평균 18일정도 일하고 교체됐으며, 노동 시간은 주 80시간 이상이었다.

이러한 정 사장의 갑질은 지난 4월 운전기사의 폭로로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재벌3세의 갑질에 대해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정 사장은 “저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은 분들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용서를 구합니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 운전기사 폭행 등으로 물의를 빚은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이 28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팔용동 몽고식품 창원공장 강당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15.12.28
연합뉴스
정 사장 뿐 아니라 김만식 몽고식품 회장도 지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평소 운전기사에게 발길질을 하고 “개xx” 등 욕설을 한 사실이 운전기사의 폭로로 드러났다. 당시 김 회장의 운전기사는 “기분이 나쁘면 습관처럼 욕설과 폭행을 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창원지검 마산지청은 지난 4월 상습폭행 및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폭행 혐의를 적용해 김 회장을 벌금 7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평소 행실을 알 수 있는 폭언, 폭행 등 각종 갑질에 대한 폭로 외에도 내부 제보에 의한 비리 사건에도 운전기사가 등장한다. 운전기사는 금품을 주고 받은 정황, 건넨 사람 등 결정적인 제보나 진술로 수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인 조기문씨에게 공천을 청탁하며 5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현영희 전 의원 사건에서도 운전기사의 제보가 수사 단초를 제공했다. 운전기사 정모씨는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시간대별로 상황을 기록한 일지 형식의 노트와 돈을 담았던 은색 쇼핑백 사진 등을 제출했다. 선관위는 정씨에게 3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비리 사실을 빌미로 협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2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사건에서 브로커 이동율씨의 운전기사 최모씨는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돈을 전달하는 자리에 함께 있었다. 최씨는 최 전 위원장에게 건네진 돈 다발을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어 이씨를 협박해 9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최씨가 찍은 사진은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결정적 단서가 됐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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