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5000만원 든 박스 기부
“소년 소녀 가장 도와 달라” 전화신분 감춘 기부 확산운동에 기여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직원들이 28일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가 놓고 간 성금 5000여만원을 세고 있다.
노송동주민센터 제공
노송동주민센터 제공
전북 전주시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세밑 추위를 훈훈하게 녹여 주고 있다.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는 28일 “오전 11시 8분쯤 50대 남성이 성금 기부를 알리는 전화를 걸어와 주민센터 뒤 공원에서 성금이 들어 있는 A4 용지 상자를 수거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화를 받은 직원 정세현(48·행정 6급)씨는 “50대 남성이 ‘주민센터 뒤 공원에 돈을 놓았으니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써 달라’는 말만 하고 다급히 전화를 끊어 해마다 찾아오는 얼굴 없는 천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 직원 3∼4명이 급히 주민센터 뒤 천사공원으로 달려가 보니 A4 용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지폐와 동전을 합쳐 5021만 7940원이 들어 있었다. 안쪽에는 “소년소녀 가장 여러분 힘든 한 해였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라는 선물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내용의 쪽지도 있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지난해와 같은 모양의 A4 용지 상자인 데다 그가 남긴 메시지 내용 등을 볼 때 해마다 찾아오는 ‘얼굴 없는 천사’와 같은 인물로 확신하고 있다.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17년 동안 18차례에 걸쳐 ‘총 4억 9785만 9600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얼굴 없는 천사의 신분은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본인이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그의 선행은 전국 각지로 번져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전주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익명으로 기부하는 ‘천사’가 전국적으로 많아졌다
전주시는 2009년 노송주민센터 옆에 천사비를 세우고 그의 선행을 기리고 있다. 천사비에는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2016-12-29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