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원인 지열발전으로 보기 어렵다”

“포항지진 원인 지열발전으로 보기 어렵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7-11-24 14:28
수정 2017-11-2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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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긴급포럼 “액상화 현상은 한반도 동남부 지진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

“포항지진의 진앙지와 600m 가량 떨어져 있는 지열발전소가 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데 정확한 원인을 찾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린다. 지열발전소가 지진의 트리거가 될 수는 있겠지만 알려진 것처럼 지진의 원인이라고 하기는 봐야할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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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 긴급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이 방청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 11. 24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포항지진 긴급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이 방청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 11. 24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포항지진에서 처음 관찰됐다는 액상화 현상은 역사적 문헌을 살펴보면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진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한국지구물리·물리탐사학회,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 대한지질공학회 공동으로 연 긴급포럼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최근 제기된 ‘포항 지열발전소가 지진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겠지만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긴급포럼은 지난 15일 규모 5.4의 포항지진 발생으로 열린 것으로 지진 관련한 학회들이 모두 모인 것은 처음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경주 지진에 이어 1년여 만에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포항지역 임시지진 관측망 운영과 미소지진’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기조발제에 나선 김광희 부산대 교수는 “포항 지진은 지표에 노출되지 않은 북동 주향에 북서방향으로 경사하는 무명의 지하단층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이번 포항지진의 지진 규모는 지난해 발생한 경주지진보다 약했지만 지진 에너지 노출량인 모멘트 규모(Mw)는 5.4로 비슷했고 지표면과 가까웠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포항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지열발전소와 관련해서는 아직 상관관계를 찾을 수는 없으나 물 주입으로 인한 미소지진(규모가 작은 지진)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도 나와있는 상태”라며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태섭 부경대 교수는 ‘한반도 남동부 지진활동과 2017 포항지진’이라는 발표를 통해 포항지진의 또하나의 특징인 ‘액상화’는 한반도 남동부 모래기반의 토질에서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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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진앙 근처  ‘모래산’
포항 진앙 근처 ‘모래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11?15 포항 지진(규모 5.4) 진앙 인근 논바닥에서 발견한 ‘샌드 볼케이노’(화산 모양의 모래 분출구). 지진 흔들림으로 땅 아래 있던 흙탕물 등이 지표면 밖으로 솟아오른 이른바 ‘액상화 현상’ 가능성이 있다고 지질연은 19일 설명했다. 기상청은 이날부터 관련 사안을 확인하고자 조사하기로 했다. 2017.11.19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연합뉴스]
강 교수는 “역사지진을 보면 조선 인조 21년 4월 23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발생한 지진이나 6월 21일 울산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액상화가 관찰됐다”며 “포항지진으로 한반도 지진에서 액상화 현상이 처음 나타났다고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포항과 경주지진은 발생 지역이 가깝다 뿐이지 지반구조나 형태 등 지질학적 차이가 크고 지진 발생 메커니즘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도 ‘지열발전소 원인론’에 대해서 “포항지진처럼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수 백만톤의 물이 주입돼야 하는데 포항지열발전소에서 사용한 물 주입량은 5000~수 만톤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열발전소의 물주입이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열발전소가 포항지진의 원인이라고 처음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진 이진한 고려대 교수는 “의도치 않게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되서 무척 불편하다”며 “포항지진을 일으킨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로 지열발전소로 인한 유발지진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인데 마치 그것이 최종 결론이나 유일한 원인처럼 받아들여져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교수는 “유발지진은 공학적 공사 때문에 발생하는 지진으로 판이 움직이거나 응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조금만 건드려준 일종의 트리거로 안정된 지층의 평형상태를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포항지진의 경우 물을 주입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단층에 영향을 주고 전체 단층의 마찰력을 약화시켜 지진을 일으켰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며 상당 규모의 실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분석한 포항지진의 여진발생 지역분포. 별표시는 규모 5.4의 본진이 발생한 곳, 노란색표시는 여진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분석한 포항지진의 여진발생 지역분포. 별표시는 규모 5.4의 본진이 발생한 곳, 노란색표시는 여진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공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포항 지진의 원인, 효과 그리고 향후 전망’이라는 발표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주목할만한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1978년 국내 계기 지진 관측 이후부터 2011년 동일본 대지진까지는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5회 밖에 없었지만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불과 6년 만에 5.0 이상의 지진이 5번이나 발생했다”며 “동일본 대지진이 한반도 지각 전체에 영향을 미쳐 지진발생 빈도도 늘어나고 강도도 강해지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동일본 대지진의 응력이 경주지진을 유발시켰고 경주지진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포항지진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번 포항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가 어디로 흘러갈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다음 번 큰 규모의 지진은 경주와 포항 사이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과학자들은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 남짓 지났을 뿐인데 명확한 원인을 요구하고 추측성 보도를 남발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이들은 “지진은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나타나는 것”이라며 “과학은 여러 가지 모델과 가설을 검증하면서 옳은 답을 찾고 그 답을 바탕으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지 당장 뚝딱 답을 내놓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도 “포항지진으로 인해 지진에 대한 공포감이 커졌는데 무조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지진을 좀 더 깊이 연구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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