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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자들 벤처 포기하고 금융권·대기업으로

고학력자들 벤처 포기하고 금융권·대기업으로

입력 2012-01-31 00:00
업데이트 2012-01-3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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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인수합병보다 고급인력 빼가기도전과 실험정신이 실종…한국 벤처 위기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끈 정보기술(IT) 산업의 원천인 벤처업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졌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안으로 떠오른 벤처기업은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급속한 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위험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에 고급 인재의 벤처행이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벤처기업을 택한 인력마저 대기업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벤처기업의 핵심인 기업가정신과 기술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코스닥 상장의 높은 벽에 가로막힌 벤처기업들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자금조달에도 애를 먹고 있다.

◇벤처기업 기술력 약화…고급인력 가뭄 탓

국내 벤처기업의 기술력이 약화되고 있다.

31일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주력 제품에 국내 유일 기술을 적용했다고 밝힌 벤처기업은 2009년 5~7월 17.9%였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 조사에서는 12.7%로 떨어졌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의 비중도 6.7%에서 4.2%로 낮아졌다.

이는 2천여개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시행한 결과다.

벤처기업 성장의 근간은 차별화된 기술력이다. 벤처기업들의 기술력 약화는 심각한 문제다.

KAIST 배종태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벤처기업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창업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고품질 벤처 창업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벤처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낮아지는 것은 고급 기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대표이사 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2009년 13.0%였지만 지난해 조사에서는 9.4%로 낮아졌다. 석사학위 소지자도 18.7%에서 18.2%로 소폭 떨어졌다. 반면에 대졸자와 고졸자는 소폭 증가했다.

벤처기업 리더들이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학력자들의 감소세는 그만큼 고급 기술 인력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벤처기업협회 허영구 정책연구팀장은 “요즘 젊은 고학력자들은 대기업이나 금융권 같은 안정적인 영역으로 진출하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고급 인력이 일단 벤처기업에 몸을 담아도 경력이 쌓이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잦다.

고급 인력의 이동은 기술 이전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벤처기업 기술 빼가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핵심 기술 인력이 유출되면 벤처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이 불가피하다.

대기업이 벤처기업 인수합병(M&A)보다는 기술 인력 영입을 선호하는 것도 문제다.

산업연구원 주현 중소벤처기업실장은 “외국에서는 좋은 벤처기업이 있으면 대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기술 인력만 빼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벤처기업들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경기불안이 지속되자 시장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사회 전반에 창업을 장려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취업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벤처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상장 ‘하늘의 별따기’…돈줄 마른다

벤처기업의 코스닥 진출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07년 신규 상장한 벤처기업은 52곳이었지만 2010년 33곳으로 줄었다. 소속부제도가 변경된 지난해 신설된 벤처기업부에 신규상장된 기업은 31곳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벤처기업수는 2만6천148개, 코스닥 벤처기업부 소속 기업은 306개다. 단순히 계산하면 전체 벤처기업의 1.2%만이 코스닥 상장의 좁은 관문을 뚫은 셈이다. 현재 코스닥벤처기업부 소속 기업은 303개로 3개가 더 줄었다.

산업연구원 주현 실장은 “주식시장이 자금조달의 중요한 통로인데 벤처기업은 한계가 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코스닥 시장의 퇴출이 더 쉬워져야 벤처기업의 코스닥 진입도 더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상장이 어렵다면 다른 경로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지만 역시 녹록하지 않다.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 경제가 불투명해져 투자는 더 위축되는 분위기다.

벤처기업 수는 사상 최대지만 자금 구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해 창업투자회사 등의 벤처투자 실적은 총 1조2천608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투자 규모는 1조2천억원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8년 이후 4년 만에 투자 규모가 줄어들 상황이다.

올해 결성될 벤처펀드 규모는 지난해 2조2천591억원에서 34%가량 줄어든 1조5천억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벤처캐피털 투자 유치도 어려워지고 있다. 벤처캐피탈 투자유치 협상조차 해보지 못한 벤처기업은 2009년 80.5%에서 지난해 88.1%로 늘었고, 이미 투자를 받았다는 기업은 같은 기간 15.5%에서 7.9%로 줄었다.

벤처업계 특성상 거듭되는 도전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내 현실은 많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매출 1천억원 벤처기업은 315개다. 창업 후 1천억원 돌파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5년 1개월이었다.

배종태 교수는 “매출 1천억원을 넘긴 기업들을 보면 대부분이 2000년 이전에 만들어진 회사들이다. 이후에는 혜성같이 나타난 기업들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벤처기업 관계자는 “코스닥 상장사를 제외한 나머지 절대다수 벤처기업은 자금조달이 어렵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물적 자산 없이 기술만으로 대출이 어렵다. 벤처캐피털사들도 대규모 프로젝트에 집중 투자하며 안정지향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코스닥시장에도 들어가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주식 전문투자자시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동시에 코스닥시장의 상장요건을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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