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현대차 사상 최대 실적에도 ‘침울’
세계 경제불황 속에 원화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면서 수출업계에 비상등이 켜졌다.원·달러와 원·엔 환율이 급락하면서 이미 상당수 수출기업이 환차손을 입고 있으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환율이 더 떨어지면 수출 채산성이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품·항공·여행 등 내수 업종은 원료 수입가격 하락과 외화부채 감소로 혜택을 보는 등 산업별 희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 삼성전자·현대차 실적호조에도 ‘침울’ =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도 자축은 커녕 오히려 침울한 분위기다.
장기화하는 불황과 격화되는 경쟁으로 어려운 경영환경이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악재까지 겹치면서 올해 실적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의 환율 수준이 유지되더라도 올해 3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4분기에만 3천600억원의 피해를 보는 등 지난해 입은 환차손이 1조2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가 거둔 지난해 영업이익 29조500억원에 비하면 당장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어도 장기화하면 내상이 예상 밖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요타·혼다 등 일본 업체와 경쟁하는 현대·기아차는 환율로 인한 부담이 더욱 크고 직접적이다.
현대·기아차는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매출이 2천억원(현대차 1천200억원·기아차 800억원) 줄고, 영업이익은 연평균 1% 낮아지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올해 원·달러 평균 환율 기준을 1천56원으로 크게 낮춰잡고 경영 계획을 수립했으나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 수출 채산성 악화 우려 = 지난해 5월 말 달러당 1,184원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꾸준히 하락해 지난 11일 1,056원까지 약 8개월 동안 10% 이상 떨어졌다.
지난해 6월 초 100엔당 1,514.8원까지 상승했던 원·엔 환율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꺾이기 시작해 지난 18일 1,174.84원까지 7개월여 동안 22% 하락했다.
이후 소폭 반등해 25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074.5원, 원·엔 환율은 1,185.33을 기록하고 있다.
환율 급락으로 인한 실제 피해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훨씬 크다. 이에 따라 정부도 수출 중소기업에 대해 정책금융 확대 등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수출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은 원·달러 기준으로 대기업 1,059원, 중소기업 1,102원으로 평균 1,080원이며, 원·엔은 각각 1,290원, 1,343원으로 평균 1천316원이다.
이에 비춰보면 원·엔 환율의 경우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울 만큼 단기 낙폭이 큰 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환율이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경우 환차손으로 인한 손실폭이 커지는 것은 물론 근본적인 수출 경쟁력까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원화 강세는 일본 정부의 경기부양을 위한 엔저 정책 등 대외 변수도 작용한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재정위기를 겪는 유로존 등 해외에 비해 양호한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반영한 것이어서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 항공·여행·식품 등 내수업종 반색 = 채산성 악화를 우려하는 수출 업종과 달리 내수 업종은 환율 하락을 반기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원화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원유, 원자재, 부품 등을 싸게 수입해 이익을 늘리고 국내 소비자들에게 물건도 싸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 물가가 안정되면 국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달러로 밀가루나 설탕 등을 수입해야 하는 식품업계가 대표적인 수혜 업종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곡물 원재료를 수입하는 CJ제일제당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내릴 때마다 연간 30억원의 이익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상승으로 고전해온 항공사들에도 유리하다. 외화부채가 축소되고 달러로 결제하는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외화부채가 75억달러 규모로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장부상으로 750억원의 평가이익이 생기는 셈이다.
해외 여행객이 늘어나기 때문에 여행 업계와 면세점 업체들에도 환율 하락은 둘도 없는 호재로 인식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