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비상구 찾아라] <8·끝> 은행

[한국 기업 비상구 찾아라] <8·끝> 은행

입력 2014-10-06 00:00
업데이트 2014-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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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뒤진 영업방식에 순익 급락… 수익원 다각화 새 전략 절실

“지금처럼 위기감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저금리 장기화에 금융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이자 수익과 수수료 수익은 줄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돌파구 마련도 쉽지 않습니다. 금융업권 전반에서 빅뱅이 진행되고 있지만 시중은행들은 그저 두 손을 놓은 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A시중은행 고위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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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금융권에서는 은행업에 대해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인식이 통용됐다. 규제 산업인 은행업은 다른 업권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아 한정된 플레이어들이 독주하며 이른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쉬운 영업과 성장전략을 펼쳐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제조와 수출 기업들이 휘청이는 가운데도 발 빠른 대출 회수와 담보 확보로 시중은행들은 흑자 기조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건재할 것만 같았던 시중은행의 수익성에도 최근 몇 년 사이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2013년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은 3조 9000억원이다. 이는 2012년 8조 7000억원 대비 55.2% 하락한 수준이다. 2005년 이후 9년간 연평균 13%씩 순익이 줄어든 것과 같은 효과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2005년 2.8%에서 지난해 1.9%까지 줄어들었다. 올해 상반기 은행지주회사 연결당기순이익은 4조 900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약 2조 6000억원(110.7%) 늘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유가증권 평가·처분 등 비이자이익이 늘어난 일회성 요인의 영향이 크다. 반면 이자이익은 NIM 하락 등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약 5000억원 줄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업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오버 뱅킹’(over-banking)에서 찾을 수 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시중은행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은행별 지점 및 자동화기기(ATM)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은행 수익성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선 최근 몇 년 동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모바일기술이 발전하면서 비대면 채널을 통한 금융거래가 늘고 있다. 인터넷뱅킹에서 모바일뱅킹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4.7%에서 지난 6월 말 45.5%(건수 기준)로 증가했다. 여기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업체로 출발한 카카오가 연내에 소액 결제 및 송금이 가능한 뱅크월렛카카오(가제) 서비스 개시를 예고하며 온라인 금융의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시장환경은 급변하고 있는데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과거 영업점 확대 위주의 영업전략을 고수하면서 수익성 악화를 스스로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객들이 영업점을 찾지 않는데 시중은행은 전국적으로 적게는 700~800개, 많게는 1200개 점포를 운용하며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있다. 실제 시중은행 적자점포 수는 2010년 530개에서 2013년에 737개로 늘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적자가 발생하는 점포라도 통폐합하면 인력구조조정 부담이 따르고 다른 은행과의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전략적으로 점포를 운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저금리 기조도 은행 수익성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금리가 2.5%에서 2.25%로 0.25% 포인트 내리면서 국내 시중은행의 순이자이익이 연간 2200억~3300억원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시중은행의 당기순이익(3조 9000억원)의 5.6~8.4%에 해당한다. 2012년 1월 기준금리 3.25%와 대비해서는 1년 7개월 만에 시중은행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이 1% 포인트가 사라졌다. 저금리 기조는 은행의 주요 수익원인 예대마진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담보대출 위주의 안전자산만 선호하는 시중은행의 영업행태는 대출금리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이는 곧 NIM 감소로 이어진다. 전상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전략실장은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은행이 예대업무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시점이 됐고 금융중개기능이라는 은행의 고유 영역까지 침범당하고 있다”며 “시중은행이 금융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인식하고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업방식의 변화 없이 인수·합병(M&A)을 통한 은행업의 지각변동은 경쟁 심화만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민영화 과정에서 경남은행과 광주은행은 각각 BS(부산은행)금융지주와 JB(전북은행)금융지주에 인수됐다. BS금융지주와 경남은행의 통합 작업이 끝나면 부산은행은 총자산 75조원으로 거듭난다. 이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60조원)과 한국씨티은행(55조원)을 넘는 규모다.

조만간 매각작업이 진행될 우리은행은 잠재적 인수후보자로 교보생명이 거론된다. 교보생명이 우리은행을 품에 안게 되면 국내 최초의 ‘어슈어뱅크’(assure-bank)가 탄생하게 된다. 또 하나은행이 외환은행과 조기통합을 연내에 완료하면 하나금융지주의 자산 규모가 400조원으로 껑충 뛰며 국내 총자산 1위 금융그룹이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방은행들이 덩치를 키워 수도권에 진출하고 대형 시중은행들은 지방이나 2금융권의 우량고객들에게까지 손을 뻗치는 이른바 금융생태계 파괴가 진행 중”이라며 “M&A를 통해 초대형 은행으로 성장한 은행들조차 차별화된 전략 없이 규모의 경제만 앞세워 과열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2014-10-0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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