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예상돼도 진행되는 SOC…의원들 ‘지역구 챙기기’ 가능성>

<적자 예상돼도 진행되는 SOC…의원들 ‘지역구 챙기기’ 가능성>

입력 2014-10-27 00:00
업데이트 2014-10-2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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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당시 만들어진 ‘4대강 자전거길’은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업으로 꼽힌다.

2천억여원을 투입해 조성했지만 이용객은 뜸하다. 도로폭 기준 미달·방호 울타리 미비 등으로 안전 사고가 우려되는 구간도 많다.

사업 추진 전에 이를 막을 장치가 있다. 공공투자사업에 대해 예산 투입이 적절한지를 따지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다.

그러나 4대강 자전거길 구간 중 한강과 금강, 영산강 구간은 사업 규모가 예타 기준보다 작다는 이유로 조사를 면제받았다.

그나마 예타를 받은 낙동강 구간의 경우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는데도 그대로 사업이 진행됐다.

결국 예타 제도를 빠져나간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된 끝에 국민의 혈세 수천억원이 낭비된 셈이다.

◇ 경제성 미흡해도 종합평가 통과하면 추진

4대강 중 낙동강 구간 자전거길 사업처럼 예타에서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았지만 그대로 추진되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은 수두룩하다.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올해 9월까지 경제성 분석(B/C)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예타 종합평가(AHP)에서 최종합격 판정을 받은 사업이 모두 82건, 총사업비로는 39억8천178억원에 이른다.

총 3조5천억원이 투입되는 중앙선 도담∼영천 철도 건설과 총사업비 2조6천억원의 인덕원∼수원 복선 전철, 1조7천억원이 들어가는 동해·묵호항 3단계 개발 등의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B/C는 앞으로 발생할 편익과 비용을 분석해 현재 가치로 환산한 점수다. 1보다 크면 경제적 타당성이 확보된 것으로 본다.

AHP는 B/C와 정책성, 기술성, 지역균형발전 효과 등을 함께 고려해 종합한 점수인데 0.5 이상이면 전반적으로 사업에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경제성이 부족해 적자가 예상되는데도 AHP에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근거는 주로 ‘낙후지역 활성화’라는 명분이다.

정부는 B/C만으로 SOC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의 부작용을 고려해 AHP에서 ‘지역균형발전’ 평가 가중치 범위를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해왔다.

여기에 얼마 전에는 현재 20∼30%인 지역균형발전 가중치 하한선을 앞으로 5%포인트 더 늘리는 예타 개선방안도 발표했다.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데 경제성만을 따지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경제성으로만 따진다면 대도시에만 사업 추진이 몰리고 낙후지역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사업이 계속 무산되는 악순환이 발생해 국토 발전이 양극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취지에서 마련된 지역균형발전 평가가 국회의원의 ‘지역구 챙기기’에 이용돼 텅텅 빈 철도와 도로 등 예산 낭비 사례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 면제규정으로 예타 피해가기도

경제성이 떨어지더라도 지역균형발전 등 다른 항목에서 점수를 얻어 예타를 통과하고 추진되는 사업들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예 예타를 받지 않았는데도 수백억이 투입되는 사업들도 있다.

경기개발연구원의 ‘SOC사업 타당성조사 제도의 허와 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5년간 각종 사유로 예타를 면제받은 사업은 68개로 총사업비가 53조8천억원에 이른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 500억원 미만인 사업은 예타 대상에서 제외된다.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더라도 공공청사나 국방 관련, 법정 시설, 재난예방·복구 사업 등은 예타를 받지 않도록 돼 있다.

4대강 자전거길 사업은 전체 구간을 기준으로 하면 투입 예산이 수천억원대여서 예타를 받아야 하지만, 4개 구간으로 나뉘면서 구간별 총사업비도 500억원 미만으로 낮아져 결국 3개 구간은 예타를 면제받았다.

법적으로 규정된 면제 사유 외에 ‘예산 쪼개기’를 통한 편법 면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정부는 최근 예타 면제 대상 SOC사업 규모를 현행 500억원 미만에서 1천억원 미만으로 늘리기로 발표한 상태다.

예타 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경제규모와 재정규모 등은 커졌지만 예타 대상 기준은 그대로여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면제 대상 사업이 확대될 경우 예산 낭비 사례도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1천억원 이하 규모로 예타를 받은 사업 총 46건 중 10건(21%)이 AHP 0.5 미만으로 나타나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으며, 총사업비로는 7천768억원에 달했다. 이중 SOC만 해도 2천100억원 정도다.

만약 예타를 받지 않았다면 타당성이 없는데도 그대로 추진됐을 가능성이 큰 사업들이다.

박원석 의원은 “예타 적용을 축소하기보다는 비용과 시간을 더 투입해서라도 타당성이 적은 사업을 배제하는 것이 국민경제적으로 그 편익이 더 클 경우 예타 적용 대상을 오히려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전문가 “지역발전 등 고려하더라도 보완책 필요”

전문가들은 예타 면제 대상 확대와 지역균형발전 가중치 상향 조정에 대해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경제성뿐 아니라 지역균형발전 효과나 정책사업 측면을 고려해 투자 사업을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준금액 상향 등을 통해 예타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4대강 사업 등도 예타를 피해 나가는 방식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완규 중앙대 교수는 “워낙 대형사업이 많아지다 보니 대상 기준 규모를 상향한 것인데, 이에 따라 예타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업은 간이 예타제도 등을 도입해 관리하는 등 보완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균형발전 가중치도 공공투자사업의 대도시 편중을 막도록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최소한의 B/C 기준을 따로 적용하는 등 안전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성모 서울대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예타제도 관련 토론회에서 “대규모 투자사업인 도로·철도 사업에 한정해 총사업비를 500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되, 사업규모 축소나 시차를 두고 단계별로 조정하는 식으로 예타를 회피하려는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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