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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여신→기술대출로 둔갑…은행권 실적 부풀리기

기존여신→기술대출로 둔갑…은행권 실적 부풀리기

입력 2015-01-25 10:24
업데이트 2015-01-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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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자영업자대출이나 갈아타기 대출을 마구잡이로 기술금융 실적에 집어넣어 겉보기 성과만 그럴 듯하게 치장한 것은 ‘캠페인성 금융정책’이 낳은 폐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의 지도를 거스르자니 불이익이 두렵고 당국의 방침을 액면 그대로 따르자니 차후 부실 발생이 우려되는 딜레마 상황에서 은행들이 나름대로 ‘살아날 길’을 모색한 자구책이라는 것이다.

◇실적 급증했지만…일반대출 기술금융으로 ‘둔갑’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외환은행 등 주요 6개 은행의 작년 12월말 기준 기술금융 지원 실적은 약 6조원으로,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작년 7월 실적 2천619억원 대비 22배 급증했다.

반면, 이들 6개 은행의 7∼12월 중소기업대출(자영업자 대출 제외) 규모는 157조8천억원으로 상반기(157조원) 대비 8천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전체 중소기업 여신 규모는 거의 그대로인데 기술금융 여신만 크게 늘었다는 것은 기존 중소기업 대출을 기술금융으로 대체됐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기존 거래기업이 일반대출로 받아도 될 대출을 기술신용대출로 ‘갈아타기’하도록 유도해 기술금융 실적을 올린 것이 많다”고 실토했다.

◇당국 기술금융 ‘드라이브’에 은행권 실적경쟁

이들 은행이 기술금융 실적 확대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부가 창조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 기술금융 확대를 강력하게 독려한 결과다.

금융위는 금융이 가야 할 길인 기술금융에 동참하지 않으면 금융인으로서 역사적 사명이 없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국은 9월부터 도입된 지 2개월밖에 안 된 기술금융의 실적을 각사별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어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을 만들어 매달 은행별 실적을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처음에는 기술금융에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던 은행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끼고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기술금융에 소홀히 하면 당국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8∼9월께 시중은행들은 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에 기술금융 실적을 추가했다. 그 결과 8월말까지만 해도 7천260억원(누적) 수준이었던 전 은행권 기술금융 실적은 9월 1조8천억원, 10월 3조6천억원, 11월 5조9천억원, 12월 8조9천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2월 은행권 기술금융 지원 건수는 1만4천400건으로 당초 정부 목표치(7천500건)의 배를 달성했다.

◇부실대출 경계에 검증된 대출로 실적포장 ‘꼼수’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기술신용정보제공기관(TCB)이 제공하는 기술신용평가서만 믿고 신규 대출을 한다는 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작년 6월말 0.94%에서 9월말 1.07%로 늘어나던 상황이었다.

지난 10월 모역보험공사의 보증서를 토대로 사기 대출을 한 ‘모뉴엘 사태’가 터지면서 기업여신 관리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졌다.

기술금융 실적은 늘리되 부실은 줄여야 하는 ‘이중고’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결국 은행들이 선택한 카드는 이미 신용도가 ‘검증된’ 기존 거래기업의 여신을 기술금융 여신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자영업자대출이 통계상 ‘중소기업대출’로 분류된다는 점을 악용해 기술신용평가서만 받아오면 자영업자대출도 기술신용대출에 끼워넣었다.

한 은행 임원은 “기술금융만으로 여신을 순수하게 늘린다고 하면 기업의 기술력만 보고 여신을 확대한다는 의미인데, 그러기에는 기술금융이 아직까지 미흡한 측면이 있다”며 “결국 기존 일반 기업대출로 나갈 것을 TCB 평가서를 받게 해 기술금융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TCB 평가만 받으면 기술금융 실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술력과 크게 관련 없는 중소기업들이 담보·신용대출 등을 요청해도 이들에게 TCB 평가서를 요구한 것이다.

실제로 작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의원이 공개한 기업은행 기술금융 현황을 보면 기술신용평가를 토대로 대출받은 592개 기업 중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기술등급 T6이하 기업이 39%(231개)를 차지했다.

최고 등급인 T1(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은 없고 T2(우수) 등급은 7개(1.1%), T3(양호) 등급은 69개(11.7%)에 불과했다.

기업은행이 자체 평가한 신용등급이 일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평가되는 BBB 이상 기업은 409개(69%)여서 거래 신용이 좋은 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기술력과 관계없는 기존에 거래하던 우량 기업을 기술금융 대출로 전환해 실적을 부풀린 것이다.

◇기술금융 도입취지 ‘무색’…”은행만 탓할 일 아니다”

은행권의 기술금융 실적이 부풀리기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성장 가능성이 큰 초기기업을 지원한다는 애초 기술금융 제도도입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담보력은 부족하지만 기술력이 뛰어나고 성장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을 가려 지원한다는 것이 애초 기술금융의 취지였지만, 이와 무관한 대출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들로서는 정부의 방침을 따르면서도 부실 위험을 떨쳐내야 한다는 딜레마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은행들로서는 정부 지침을 곧이곧대로 따랐다가 손실이 날 경우 징계 부담은 해당 은행과 직원이 고스란히 떠안곤 했던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당국이 고의나 중과실 없이 절차에 따라 대출했을 경우 면책을 보장하는 방안까지 내놨지만 이를 그대로 신뢰하는 은행은 사실상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술금융 대출이 나중에 부실로 판명 나면 나중에 질책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기존의 검증된 곳에만 대출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 대출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술금융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줄 세우기를 하며 독려하다 보니 은행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구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며 “실적을 포장했다고 마냥 은행만을 탓할 일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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