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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6개 이식하고 희망의 새삶 찾은 4살 현호”

“장기 6개 이식하고 희망의 새삶 찾은 4살 현호”

입력 2015-05-04 07:28
업데이트 2015-05-0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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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이명덕 교수팀, 국내 첫 ‘6개 변형다장기이식’ 수술수술비만 1억여원’너무 희귀한 희귀질환’도 복지혜택 필요

이달로 4살(만 3세)이 되는 현호(가명)는 ‘위장관 거짓막힘증’이라는 희귀병 환자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나고 갑작스러운 장 막힘 증상이 생겨 여기저기 병원을 찾아다닌 끝에 이 희귀병을 최종 진단받았다.

위장관 거짓막힘증은 소장의 운동성이 약해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하거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질환이다. 이런 증상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악화해 장애범위가 전체 위장관으로 넓어진다. 이 때문에 영양결핍뿐만 아니라 멈춰 있는 창자 속 음식물의 부패, 세균번식, 감염으로 패혈증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꼽힌다.

이런 현호가 건강을 되찾을 길은 제 기능을 못하고 망가진 소화기계 장기 대신 정상적인 사람의 장기로 이식하는 수술밖에 없다. 예컨대 위, 십이지장, 췌장, 비장, 공장, 회장(소장), 대장을 모두 떼어내고 다른 사람의 장기로 바꿔 넣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 이식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장기 기증자를 만나기도 어렵지만 운 좋게 기증자를 구한다고 해도 혈관이 얽히고설켜 있는 6개 장기를 한꺼번에 이식하려면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현호는 몸에 별도의 장루를 만들어 먹지 못해 모자라는 영양분을 정맥을 통해 공급하는 ‘재가정맥영양법’에 의존하며 살아왔다.

이런 현호네 가족이 이식을 결정하고 서울성모병원 소아외과 이명덕 교수를 찾은 건 약 2년여전인 2013년 여름이었다. 이 교수는 국내 처음으로 소장이식수술을 성공시킨 적이 있는 국내 이식수술의 권위자로 꼽힌다.

이 교수는 우선 현호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이식 대기자로 등록했다. 그러나 이 교수의 마음은 복잡했다. 당시 두살 밖에 되지 않은 현호의 뱃속 크기에 딱 맞춰진 장기 기증자가 나타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린이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극소수인 국내 여건도 이런 부담을 더욱 크게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4월 현호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뇌사 기증자의 장기 상태가 기대만큼 좋지 않고, 현호도 갑작스러운 고열로 이식을 포기하게 되면서 현호의 삶에 대한 기대는 다시 원점이 됐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25일 막연한 기다림 속에 기적이 다가왔다.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네살 어린이가 숭고한 장기 기증자로 나타난 것이다. 이 기증자는 현호와 몸 크기가 맞아 장기를 한 덩어리 채로 옮겨야 하는 ‘변형다장기이식’에 더없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됐다.

보통 장기를 이식할 때 간을 함께 이식하면 ‘다장기이식술’이라 하고, 간을 빼고 하면 ‘변형다장기이식술’이라고 부른다. 간을 포함한 7개 장기를 모두 이식하는 다장기이식술은 국내에서도 이미 성공한 바 있지만 이보다 어려운 변형다장기이식술은 현호가 처음이었다.

변형다장기이식술이 더 어려운 수술로 꼽히는 것은 간을 떼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기 때문에 이어 붙여야 하는 혈관 수도 훨씬 더 많고, 보다 정밀한 세부 수습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호의 간 기능은 정상이었다.

수술은 곧바로 시작됐다.

혈관이식외과팀이 먼저 장기기증자의 장기 적출에 들어갔다. 변형다장기이식은 내장동맥부터 상장간막동맥까지 한꺼번에 대동맥에 붙은 채로 얻지 못하면 혈류를 유지시킬 수 없기 때문에 간, 소장-췌장, 신장의 혈관 나눔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더욱이 기증자의 심장과 폐, 간은 다른 병원에서 이식이 결정됐기 때문에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의료진은 타 병원 의료진들과 변형다장기이식의 중요성과 어려운 점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눈 끝에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다.

적출된 기증자의 장기를 현호한테 이식하는 부분은 이명덕 교수의 몫이었다. 간을 보전하면서 기타 소화기관들을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절단과 문합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총 5군데의 혈관, 담도 등의 위장관 5곳을 각각 이어붙이고, 배설을 위한 장루 2곳, 급식용 장루관 1곳 등을 만드는 등 총 13가지의 독립적 수술과정에 18시간 30분이 걸렸다.

수술 과정에서는 이식 후 혈류가 다시 개통돼 이식된 장기들이 살아나기까지의 ‘냉각허혈시간’ 5시간 30분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다행히 이식된 소장이 제 기능을 회복하는데 최대 허용시한인 8시간보다 훨씬 일찍 완료돼 의료진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현호는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진균성간농양, 폐렴 등의 감염증, 일반 고형 장기이식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면역거부반응(이식편대숙주반응) 등의 위중한 고비를 겪기도 했다.

5개월이 지나 현호는 가정에서 생활해도 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아져 어린이날을 나흘 앞둔 지난 1일 퇴원했다.

현호는 현재 하루 식사 필요량의 ⅔ 이상을 입으로 섭취하며 여느 아이들처럼 쾌활하게 생활하고 있다. 당분간은 퇴원 후에도 소량의 정맥영양제와 수액보조투여를 시행하지만 이마저도 곧 종료하게 된다. 함께 이식된 췌장 기능도 좋아져 혈당도 안정되고 혈중 아밀라아제는 줄곧 정상 범위를 유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면역거부반응으로 나빠진 폐기능이 회복되지 않았고, 1년 후 장루 복원 등의 마무리 수술을 남겨 둔 상태지만 힘든 고비는 다 넘긴 셈이다.

현호의 어머니(38)는 4일 “어른들도 견디기 어려운 오랜 시간의 수술을 견뎌낸 아이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호에게) 수술비용 1억여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수억원의 치료비가 들었지만, 치료 과정에서 도움을 요청한 보건소나 정부로부터는 ‘너무 희귀한 희귀질환’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면서 “현호와 같은 난치성 희귀질환자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끔 하는 실효성 있는 정부정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명덕 교수는 “소장 단독이식이나 다장기이식과 달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하는 까다로운 수술이다 보니 매우 긴장했다”면서 “아이와 보호자, 의료진은 물론이고 모든 이식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보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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