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1~3등급이 79% 이용…금융위 “중산층 이하도 대출구조 개선”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안심전환대출이 오는 24일 출시 1년을 맞는다.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은 고정금리로 갈아타도록 유인해 ‘부채의 질’을 개선하고, 급증하는 대출속도를 줄이자는 취지로 마련한 정책이다.
부채의 질을 개선하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으나 빠르게 늘어나는 대출 속도까지는 잡지 못했다.
중산층 이상은 저리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매월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러운 서민들이 원금 상환 부담이 덜한 제2금융권으로 내몰리면서 서민층은 혜택을 보지 못했다는 비판을 샀다.
◇ ‘안심전환’에도 안심 안되는 가계부채…역대 최고
안심전환대출은 작년 2월26일 금융위원회가 가계 부채 대응 방향의 하나로 발표한 정책이다. 발표 후 약 한 달이 지난 3월24일에 출시됐다.
일정 기간 이자만 갚다가 만기에 대출을 상환하거나 변동금리 중심의 대출 구조를 원금을 갚아가는 고정금리 방식으로 바꿔 대내외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 부담 증가 가능성을 선제로 대비하겠다는 차원에서 기획됐다.
당시 가계대출이 1천100조원이 넘는 수준으로 올라가자 대출 속도를 줄이고 부채의 질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기존 대출자들은 연 2.6%대라는 저금리로 ‘갈아타기’ 위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출시 나흘 만에 20조원이 소진됐으며 31조원이 넘는 금액이 전환됐다.
효과는 있었다. 고정금리형과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이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8%포인트씩 올라갔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작년 말을 기준으로 고정금리형은 35.7%,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은 38.9%까지 뛰었다. 목표이던 35% 수준을 둘 다 초과 달성했다.
그러나 가계 부채는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천207조원에 달했다. 개인당 2천400만원의 빚이 있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은행이 가계신용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4분기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1년새 무려 121조7천억원(11.2%)이 늘어나 연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다만 금융위원회는 “분할상환 비중이 확대돼 매년 7조5천억원의 부채가 감축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 저소득층에도 혜택 돌아갔을까…한계 지적도
가계 대출은 큰 폭으로 늘었지만 수혜 대상자 중 상당수가 중산층 이상이어서 ‘부채의 질’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은 출시 직후부터 나왔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이휘정 수석연구위원은 “원리금 상환 여력이 있는 대출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인 만큼 어느 정도 여력 있는 이들이 전환했을 것”이라며 “정말 위험한 대출자였느냐, 그래서 정말 부채의 질이 개선됐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원리금을 함께 분할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꼬박꼬박 갚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실제로 안심전환대출 실행분 31조6천억원을 신용등급별로 따져보면 1등급 대출자가 39.9%, 2등급이 19.7%, 3등급 19.4%로 전체의 79%가 1∼3등급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6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5.6%에 불과했다.
혜택이 전 계층에 고루 돌아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 통계다.
오히려 안심전환대출 출시 전후로 원리금 분할상환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서민층에게 은행권의 문턱이 더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한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22조4천459억원으로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작년 저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안심전환대출의 금리와 주택담보대출의 금리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며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갔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 안심전환대출 중도 탈락 가능성도 소득 적을수록 높아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탔다가 중도 탈락할 가능성도 저소득층이 높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2월을 기준으로 전체 안심전환대출이 이뤄진 금액 가운데 3.4%인 1조852억원이 중도상환됐다.
중도상환된 금액 중 28.8%가 연소득 2천만원 미만에게서, 36.4%가 2천만원 이상 ∼ 5천만원 미만 소득자에게서 발생했다.
5천만원 이상∼8천만원 미만(22.0%), 8천만원 이상이 12.8%로 소득이 높을수록 중도상환 금액이 감소했다.
전체 대출금액 중 중도상환이 이뤄진 비율(중도상환율)도 2천만원 미만이 3.7%, 2천만원∼5천만원이 3.6%, 5천만원∼8천만원이 3.2%, 8천만원 이상이 2.9%로 소득이 높을수록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는 생각에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했는데,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부담이 점점 커진 계층은 중도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들은 중도상환에 따른 비용이 들어가서 오히려 데미지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이는 여타 정책모기지의 중도상환율(7.5%)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며, 중도상환 사유도 담보주택 매매가 81%로 대부분”이라며 “소득계층별 중도상환 분포는 전체 대출취급규모 분포와 유사해 소득수준과의 연관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 우려 속 정부는 자화자찬
안심전환대출의 성과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지만, 금융위는 비거치식·분할상환 방식의 바람직한 금융관행을 형성하고 가계부채를 감축할 수 있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금융위는 2015년 3∼5월 취급된 일반 주택담보대출자와 안심전환대출자를 비교한 결과 안심전환대출자의 가계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안심전환대출자의 신규 연체발생률이 1.4%로 일반 주택담보대출자(1.8%)보다 0.4%포인트 낮았다고 덧붙였다.
연체발생률은 소득 2천만원 미만 대출자가 1.6%, 5천만원 미만이 1.5%로 8천만원 미만(1.1%), 8천만원 이상(0.7%)보다 높게 나타났으나 금융위는 “소득별로 큰 차이가 없으며 모든 대출이 갖는 일반적 특성”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3.4%인 안심전환대출 중도상환율도 일반 주택담보대출자의 중도상환율(13.2%)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중산층 이상에 혜택이 돌아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금융위는 “안심전환대출 이용자의 평균소득은 4천만원으로 연소득 6천만원 이하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며 중산층 이하의 대출구조 개선에도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2월 기준으로 전국 평균매매가격 3억원인 아파트가 전체 담보의 87.1%를 차지함에도, 안심전환대출 이용자의 주택가격은 평균 2억9천만원이었으며 6억원을 넘는 주택의 비중이 4.7%에 그쳤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최저금리 2.3%의 디딤돌대출 등 정책모기지 상품을 운영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전히 제2금융권으로 밀려나는 저소득층의 부채 위험성은 줄지 않고 있으므로 더욱 면밀한 대책이 요구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전체적으로 가계부채 증가세는 정점을 찍었다고 보지만, 취약한 계층에서는 더 늘어나는 조짐이 있다”며 “특히 젊은층과 노년층, 그리고 자영업자와 다중채무자 등 약한 고리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으로는 안심전환대출과 같이 금융부채를 늘려주는 금융정책보다는 더 종합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가 힘을 모아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소득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도 “범 정부적인 차원에서 가계부채를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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