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중 1명꼴 정신분열 환자 가능성…조기치료하면 정상 생활
서울 강남역 인근 주점에서 벌어진 ‘화장실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정신분열증(조현병) 환자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다는 우려가 나온다.조현병은 정신분열증의 공식명칭으로 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정서적 둔감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질환으로 국내에 50만명의 환자가 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조현병은 조기진단과 약물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효과를 보지만,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강제할 수 있는 관리제도에 제약이 많다는 지적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피의자 김 모씨 역시 2008년부터 지금까지 4차례 조현병으로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올해 3월부터 약을 먹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 정신병 환자 외래치료명령제·강제입원, 인권 논란에 ‘유명무실’
조현병 치료 관리의 맹점은 환자 스스로가 거부하면 치료를 강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 치료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다.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 외래치료명령제 등의 제도가 있지만, 환자 인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까다로운 조건들에 막혀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실정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개정된 정신보건법도 환자의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개정돼 관리에는 어려움이 더 커졌다는 평가다.
기존에는 정신과 의사가 필요성을 인정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환자가 본인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어야함 한다.
또 전문의가 강제입원을 결정한 경우 외부기관인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가 입원의 적합성을 한 차례 더 심사하도록 규정했고 최대 입원 기간도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었다.
강제입원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에 대해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아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1년 이내 외래치료명령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외래치료명령제 역시 허점을 갖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래치료명령제를 시행할 수 있는 환자는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한 행동을 한 이력을 갖고 있어야 하고 시장, 군수, 구청장은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 등 제한적이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피의자 역시 자해 또는 타해 이력이 없어 외래치료명령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김창윤 교수는 “환자가 자해나 타해를 하기 전에 치료해야 하는데 병이 심해지기 전에는 치료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의사결정권도 중요하지만, 과연 자신에게 유리한 게 무엇인지 모르는 환자의 판단도 존중하고 내버려둬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실제 처음에 치료를 거부했던 환자들도 회복되고 나면 당시에 치료를 거부했던 행동을 후회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 국내 환자 50만명 추정…5명 중 1명만 병원 치료
이번에 주목을 받은 조현병은 전 세계적으로 유병률이 인구의 1% 정도로 나타나는데 국내에서는 50만명에 이르는 인구가 조현병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중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환자는 5명 중 1명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비 지급자료에 따르면 조현병(질병코드 F20) 진료 인원은 작년 10만4천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병에 대한 인식이 최근 개선되면서 치료를 받는 환자가 2010년 9만 4천명에서 5년 사이에 10.6% 증가한 수치다.
이처럼 조현병을 앓아도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는 배경에는 정신질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리던 병의 이름을 2011년 조현병으로 변경한 것도 사회적 이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김의태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은 출근길에 같이 지하철을 타는 100명 중 1명은 걸릴 수 있는 질환”이라며 “매년 2만명이 신규환자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조현병을 두고 빙의, 악마의 저주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뇌에 문제가 생긴 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며 “문제는 여전히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치료를 꺼리는 환자가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의 개별적 조치로는 이번 화장실 살인과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없다”면서 “무엇보다 정신분열병 등의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사회적 낙인에 대한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치료받으면 대다수 정상적인 사회생활 가능
전문가들은 조현병은 조기진단과 약물치료로 대다수의 환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을 앓는다고 해서 모두가 미치거나 노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기 발견해서 관리만 잘한다면 정상적으로 학교나 회사에 다니는 환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하 교수는 “다만 조현병은 만성질환으로 당뇨병과 같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병이 2~3번 재발한 경우라고 해도 약만 잘 먹으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병원에서 입원, 외래 등의 치료를 받은 환자 중에서는 80%가량이 효과를 얻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료 효과를 높게 잡으면 80~90%까지는 회복이 된다고 볼 수 있다”며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효과가 없는 환자들도 있지만, 많이 봐야 30%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조현병을 치료하는 약물의 부작용이 과거보다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지속력이 뛰어난 약물이 개발됐다는 점 등도 희망적이다.
김의태 교수는 “조현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균형이 깨져서 나타나기 때문에 이 균형을 맞춰줄 수 있는 약물치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행동이 느려지고 말투가 어눌해지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요즘 약물들은 이런 부작용이 없다”며 “최근에는 한 달에 1회만 맞으면 효과가 지속하는 장기지속형항정신병약물도 개발된 상태라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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