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 국가경쟁력지표의 허와 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를 두고 국내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평가대상 137개국 가운데 26위로, 4년 연속 제자리걸음으로 나왔다. 일부 언론에선 이를 두고 과도한 노동 경직성이 문제라거나, 소득주도성장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따져보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과연 국가경쟁력 평가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국가경쟁력 평가는 유엔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생산한 34개 통계와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80개 항목을 기반으로 국가별 경쟁력을 평가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한국에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세계경제포럼과 협정을 맺어 무상으로 설문조사를 대행한다. 한국개발연구원에선 종업원 규모에 따라 대기업(33명), 중기업(34명), 소기업(33명) 등 1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설문조사를 수행했다. 응답률은 24%였다.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유엔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구(IMF) 보고서와는 무게감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사실 국가경쟁력 평가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기획재정부만 해도 지난해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를 소개하는 보도자료 말미에 “평가분야가 포괄적이나, 평가방식에 있어 자국기업인 대상의 설문조사 비중이 높아 만족도 조사의 성격이 높고 국가간 객관적 비교에는 한계”라고 언급했다. 금융위원회 역시 2015년 보도자료에서 “WEF 평가는 자국 기업인 대상의 설문조사 위주로 구성되어 만족도 조사의 성격이 높고 국가간 객관적 비교에는 한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서울대 고길곤 교수는 2012년에 쓴 논문 ‘국가경쟁력지수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서 개념의 모호성, 측정의 신뢰성과 타당성의 부족, 결과 산정의 문제, 활용과 해석상의 자의적 해석 등을 지적했다. 이 정도면 학계에선 거의 파문 수준이나 다름없는 비판이다.
“한국의 경우, KAIST 최고경영자과정 재학생 및 동문(2000명)과 한국신용평가에 등록된 기업의 최고경영자 중 무작위로 선정한 80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확률추출이라고 보기 어렵고, 응답률도 10%밖에 되지 않아 그 대표성을 인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3~44쪽).” “2003년에는 총 49개의 지표가 삭제되었고, 2005년에도 총 45개의 지표가 삭제되었다. 2007년에는 27개의 지표가 추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측정지표의 변동은 국가경쟁력지수의 측정결과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45쪽).” “순위정보는 연구자의 올바른 판단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54쪽).”
국가경쟁력 평가를 둘러싼 논란은 일차적으로 아전인수식 해석에 기인한다. 평가 결과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혹은 언론의 특정한 프레임에 따라 결론을 정해놓고 접근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정부 스스로 이런 경향에 편승하는 것 역시 논란을 키운다.
가령 기재부는 작년과 올해 보도자료에서 정반대 해석을 내놓았다. 올해엔 “사람중심 경제발전을 세계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했다면서 “경쟁국 대비 혁신역량 우위 유지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하지만 작년에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노동 등 구조개혁과 산업개혁 지속 추진 및 성과 확산을 위한 조속한 입법조치가 긴요한 과제”라고 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26위로 순위변동이 없었지만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전혀 다르다.
국가경쟁력 평가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은 설문조사를 수행한 전문가가 오히려 더 강조한다. 정영호 KDI 여론분석팀장은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국가경쟁력 평가는 기업인들이 느끼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체감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론도 그렇고 정치권도 그렇고 과도한 해석은 피해야 합니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