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 (중) 재건축 단지… 투기꾼인가 희생양인가

[하우스 푸어] (중) 재건축 단지… 투기꾼인가 희생양인가

입력 2010-08-03 00:00
업데이트 2010-08-0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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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익 더 투명하게 관리·회수해야 개선될 것”

몇년 전 발빠른 사람들은 수억원대 시세차익과 환급금을 노리고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단지에 뛰어들었다. 학군이 좋고 개발 가능성이 높은 아파트를 노렸다. 은행 대출도 쉬웠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환급금은커녕 도리어 억대 분담금을 부담하면서 많은 대출 이자에 한숨만 내쉬고 있다. 재건축 사업도 제자리걸음이다. 대박을 기대했던 재건축 아파트가 하우스 푸어를 양산한 주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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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대 규모 재건축단지인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 7년째 재건축 사업이 제자리에 머무르면서 주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전국 최대 규모 재건축단지인 서울 송파구 가락시영아파트. 7년째 재건축 사업이 제자리에 머무르면서 주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기존 사업을 지속할지에 대한 법적, 정책적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사업의 목표가 주거복지 향상에 있기 때문입니다.”(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재건축단지의 ‘하우스 푸어’는 부동산정책의 희생양인가, 대박을 노리던 운 없는 투자자들일까. 과거 대형 건설사들마다 사활을 걸고 매달려온 재건축 사업은 확실히 남는 장사로 통했다. 서울 도곡동 등 일부 재건축단지에선 집주인들이 새 아파트를 받고도 수천만~수억원을 ‘덤(조합청산에 따른 환급금)’으로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집값 거품이 꺼지면서 이제는 오히려 최고 억대의 분담금을 강요받는다. 금융권 대출과 함께 하우스 푸어의 숨통을 죄고 있는 분담금의 무게는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봤다.

2006년 서울 송파구의 낡은 가락시영아파트로 이사온 중소기업 부장 성모(48)씨. 그는 1차 56㎡를 7억 6000만원에 구입했다. 재건축이 본격화되기 전 강북의 아파트를 팔고 학군과 주거환경이 좋은 강남으로 옮긴 것이다. 아침이면 뻘건 녹물에 세수하고, 여름이면 날아드는 모기 때문에 고생했지만 불어날 재산을 떠올리며 꾹 참았다.

하지만 2007년 7월 조합 정기총회에서 새 사업시행인가를 받으면서 재건축 분담금의 규모가 드러났다. 목표로 했던 138㎡를 받으려면 5억 6438만원을 내야한다. 198㎡의 경우 분담금은 13억 7360만원으로 늘어난다. 138㎡ 집값만 13억 2438만원인 셈이다. 3억원 가량 대출이 있던 성씨는 서둘러 집을 내놓았지만 전매가 허용되지 않았다. 현재 집값은 살 때보다 2억원 가량 급락한 상태다. 대출이자만 매월 200만원가량 나간다.

가락시영아파트는 전국 최대 규모의 재건축단지다. 39만 8000㎡에 아파트 134개동 6600가구, 상가 1개동 324개로 구성됐다. 2003년 조합 창립 이후 2007년 새로운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지만 행정법원이 최근 항소심 판결 때까지 사업시행인가 효력을 정지시키면서 사업도 중지됐다. 사업시행인가 과정에서 사업비가 1조 2462억원에서 3조 545억원으로 급증하는 등 주민 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은 탓이다.

7년째 사업이 제자리를 맴돌면서 성씨와 같은 이주민 외에 20~30년씩 거주한 원주민들도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현재 단지에 거주하는 원주민 비율은 15% 안팎이다. 1차 49㎡에 거주하는 김모(63·여)씨의 경우 1992년 2차 42㎡에 입주한 뒤 2000년 지금의 집으로 다시 옮겼다. 김씨는 “동대문에서 신발장사를 하다 5년 전 은퇴해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데 마치 판잣집에 사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곳 전셋값은 7000만원 안팎. 이 돈으로는 인근 원룸으로도 옮길 수 없다. 그는 “원주민들은 대부분 가락시장 자영업자나 샐러리맨으로 생활이 풍족하지 못해 사업이 미뤄질수록 개인파산을 선고하는 사람이 늘 것”이라고 전했다.

김씨도 기존 사업시행인가에 따라 애초 마음먹었던 110㎡의 집을 얻기 위해선 1억 7924만원이 필요하다. 조합이 새로 마련한 변경안을 적용하더라도 분담금은 6477만원이나 된다. 이마저도 토지가 2종에서 3종으로 바뀌고 용적률이 상향된다는 전제가 달렸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가락시영아파트의 분담금 내역에 따르면 2차 33㎡(300가구)에 거주하는 가구주가 80㎡ 새 아파트로 이주하려면 6446만원, 110㎡는 3억 5371만원, 198㎡는 16억 3053만원이 필요하다. 또 2차 56㎡(1200가구)에 거주하는 가구주가 126㎡로 이주하면 2억 4349만원, 138㎡는 4억 5585만원, 165㎡는 7억 8243만원의 분담금이 부과된다.

반면 눈을 조금 낮춰 2차 56㎡에 거주하는 가구주가 80㎡로 이주할 경우 3억 98만원, 100㎡는 1억 1685만원, 110㎡는 1173만원의 환급금이 남는다.

조합 측은 아울러 최근 882가구를 일반분양하는 것을 전제로 1억원 가량 부담이 준 새 분담금안을 내놨다. 하지만 2004~2006년 한창 재건축단지 붐이 일었을 때 ‘상투를 잡고’ 들어온 사람들은 주저한다. 시세차익을 통해 그동안 물었던 이자 등 금융비용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최근 재건축단지의 비애는 그동안 부동산 투기로 이익을 본 사람들 외에도 정권의 ‘욕망의 정치’가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올림픽을 앞둔 경기부양으로 1980년대 후반 강남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후 앞다퉈 진행된 신도시 개발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도 “헌 집을 주고 새집을 얻는 과정에서 막대한 수익이 가능했기에 나온 결과”라며 “개발이익을 더 투명하게 관리하고 회수한다면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권순형 J&K투자연구소 대표는 “저밀도 2종 주거지인 가락시영아파트를 은마아파트처럼 3종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2010-08-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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