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은행권에 부는 ‘이공계 뱅커’ 바람
#1. 국민은행 자본시장부에서 일하는 김미숙(29·여) 대리는 포항공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해 석사 과정까지 마친 뒤 2011년 공채로 입사했다. 학부 시절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퀀트(금융 데이터 흐름의 특징을 분석해 상품을 개발하거나 수학적 모델을 이용해 거래하는 일)가 각광받는 것을 보고 금융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은행 입사 후 영업점 업무를 거친 뒤 자본시장부 퀀트팀으로 온 김 대리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딜러들이 효과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한다. 은행 업무를 하며 금융 전반에 빅데이터의 활용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는 걸 직감한 김 대리는 지난해 산업공학과 빅데이터 분야로 박사 과정을 밟았다.#2. 산업은행 벤처기술금융실 직원들은 30% 이상이 화학·섬유, 기계·항공, 전기·전자, 지질, 토목 등을 전공한 공학도다. 생명공학 전공자는 바이오 분야, 기계·항공공학 전공자는 기계분야 투자팀에서 근무하며 전공별로 벤처기업에 대한 사업성을 분석하고 투자심사 업무를 담당한다. 2012년에는 ‘테크노뱅킹’ 등 국내에서 처음으로 IP금융(특허 등 지식재산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금융 활동)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최근 다양한 신성장 산업들이 떠오르면서 이 부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셋 중 한 명은 공학도인 KDB산업은행 벤처기술금융실 직원들이 13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KDB산업은행 제공
KDB산업은행 제공
●공학적 금융 수요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최근 이공계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신입 공채에서 30%를 이공계와 IT 전공자로 선발했다. 신한은행 역시 지난해 하반기 공채에서 30%가량이 이공계 출신이었다.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10%가량이 이공계 출신이다. 특히 은행의 기술금융 담당 부서는 전체 인원의 절반 이상이 이공계 출신들로 구성돼 있다. 산업은행의 경우 산업기술리서치센터 67%, 금융공학실 35%, 벤처기술금융실 30%가 이공계 출신이다.
전산 프로그램 작업 등 꼭 IT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공계가 은행권에서 뜨고 있는 이유는 신성장 산업에 대한 심사와 투자 업무가 늘어나고 있고, 은행들도 전통적인 은행 산업에서 벗어나 빅데이터나 모바일이 접목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미국에서도 전통적인 경제·경영학보다는 특정 분야에 대한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나 공학적 기술에 대한 금융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는 산업 트렌드 자체가 수학적 논리와 통계적 능력, 프로그램 코딩 등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업점 근무 필수’ 이공계에겐 진입장벽
그러나 아직까지 이공계 뱅커의 역할을 제대로 활용하는 데 한계는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공채 때 이공계 출신 비중을 따로 두거나 가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상경계 출신 지원자들에 비해 금융권 입사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또 IT 직군으로 입사하더라도 영업점 근무를 필수로 하는 점 역시 이공계 출신들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공대 출신 은행원 A씨는 “은행원에게 영업점 경험은 꼭 필요하지만 보수적인 조직 문화와 서류 작업에 부담을 느끼고 중도 포기하는 이공계 출신들이 많은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라면서 “전공 분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부 직군에 한해 영업 근무 기한을 정해 둘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7-03-14 2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