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메달 심리학/구본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메달 심리학/구본영 논설위원

입력 2010-02-23 00:00
업데이트 2010-02-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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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밴쿠버 동계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는 기쁨이 쏠쏠하다. 각본 없는 드라마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관전자의 입장에선 1위든, 2위든 시상대에 선 선수들의 얼굴에서 오랜 세월 감내해 왔을 법한 인고의 무게는 똑같이 읽혀진다.

하지만 메달 색깔에 따라 선수들의 표정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 뒤풀이 세리머니에서 우승한 이정수의 환한 얼굴과 간발의 차로 은메달에 머문 이호석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보라. 이 정도의 희비 교차는 인지상정일 게다. 그러나 동메달보다 은메달을 딴 선수의 얼굴이 더 어둡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회심리학적 함의가 숨어 있는 까닭이다. 이상화 선수가 우승한 여자스피드스케이팅 500m 시상식. 동메달을 따낸 중국의 왕베이싱이 활짝 웃는 동안 은메달리스트인 독일의 예니 볼프는 씁쓸해 보일 정도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왕보다 우승을 자신했던 볼프가 진한 상실감을 감추지 못했던 걸까.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 등 외신은 이를 주목했다.

이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심리학 연구진의 심리분석 결과와 궤를 같이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들의 행복 점수는 10점 만점에 7.1점인 반면, 은메달리스트들은 4.8점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조금만 더 힘썼으면 금메달이었는데….”라고 ‘자탄’하지만, 동메달 딴 선수들은 “하마터면 노메달이었겠군.”이라고 ‘자위’하기 때문이란다. 최인철 교수의 책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프레임’에서 그런 사례를 읽었던 생각이 난다. 불교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이다. 서양 심리학에서도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인 ‘프레임’을 바꾸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작가 마거릿 리 런백이 그랬던가. “행복은 종착역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 발견되는 것”이라고. 결과보다 과정을 즐긴다면 이호석이든 볼프든 은메달로도 충분히 행복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사회적 분위기다. 사회 전체가 승리지상주의와 승자 독식만 부추긴다면 개인 루저는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게다. 한 분야에서 패배하더라도 다른 데서 또 다른 기회의 창이 열려 있으면 사람들은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는 다수가 불행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를 해결하는 건 결국 정치의 몫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2010-02-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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