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김정일의 초읽기 심리/구본영 논설위원

[씨줄날줄]김정일의 초읽기 심리/구본영 논설위원

입력 2010-02-25 00:00
업데이트 2010-02-2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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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다. 자연인의 수명이든, 절대적 지배자가 누리는 권력이든 매한가지다. 그래서 인생 황혼기나 권력 말기에는 누구든 초조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요즘 “신경질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특히 국정원은 그제 국회 정보위에서 “김 위원장이 (김일성의)유훈을 관철하지 못했다고 자탄하는 등 현안 해결에 대한 초조감을 많이 피력하고 있다.”고 보고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100% 신빙성 있는 정보분석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럴듯한 정황적 근거는 많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이(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을 베풀겠다.”는 수사로 요약된다. 하지만 북한의 보통사람들은 여전히 강냉이밥으로라도 허기를 못 채우는 상황이 아닌가. 김 위원장도 건강이상설에 시달리며 후계구도와 국제사회와의 핵게임 등으로 인한 중압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혈맹인 중국조차 지난해 북 정권의 세습을 반대하고 핵포기를 요구했다고 한다.

최근 남북관계나 북한 내부 노선이 오락가락하는 양상이 김 위원장의 ‘초읽기’에 몰린 듯한 심리를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상회담을 타진하면서 서해상에 해안포를 쏴대는 일이 그렇다. 전격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해 시장을 폐쇄했다가 다시 푸는 등 갈팡질팡하는 듯한 모습도 마찬가지다. 조훈현이나 이창호 같은 바둑 고수도 초읽기에 몰리면 왕왕 실수를 하는 법이다. 문제는 신산(神算)의 절대 고수라도 임기응변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초반 포석이나 행마가 근본적으로 잘못됐을 경우다. 중국 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은 생전에 김일성과 모두 11차례 만나 개혁·개방을 권유했다고 한다. 중국 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이 편찬한 ‘덩샤오핑 사상연보’ 등에 나오는 비화다. 김일성이 “창문을 열면 신선한 바람과 함께 모기(체제에 위험한 외부사조)도 들어온다.”며 소극적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알려진 얘기다.

결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이 오늘날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G2 반열에 올려놓았음은 불문가지다. 이제라도 김 위원장이 김 주석의 유훈 관철에 매달리기 전에 이를 위한 수단인 노선 선택부터 잘못됐음을 알았으면 싶다. 북한주민에게 쌀밥을 주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북한체제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개혁·개방 이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2010-02-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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