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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샌델 신드롬/함혜리 논설위원

[씨줄날줄]샌델 신드롬/함혜리 논설위원

입력 2010-08-23 00:00
업데이트 201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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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쯤~기원전 399년)는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펴내거나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연하지 않았다. 다만 아테네의 거리와 법정 주변을 누비고 다니며 끊임없이 사람들과 대화하고 사색했을 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용기가 무엇인지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질문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모순된 것이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상대방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면서 믿음과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하는 소크라테스 특유의 대화 방법을 학자들은 논박술이라고 부른다. 소크라테스가 스스로를 ‘지혜를 낳는 산파’라고 부른 데서 유래해 ‘산파술’이라고도 한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지혜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정의론’을 강의하고 있다. 극장식 강의실에서 토론형식으로 진행되는 정의론 강의는 지난 20여년 동안 하버드대학 학생들 사이에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혀 왔다. 그의 강의는 언제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분쟁거리나 이슈가 되는 시사문제도 등장하며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모든 의제들의 공통점은 도덕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는 것. 그리고 툭툭 던지듯이 문제제기를 한다. 하나같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혼란스러운 학생들에게 샌델 교수는 묻는다. “올바른 것은 과연 무엇인가?”

샌델 교수의 강의내용을 묶은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국내 출간 석 달 만에 32만부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지난 20일 아산정책연구원 주최로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샌델 교수의 내한 강연회에는 4500여명이 몰려 ‘정의’와 ‘도덕’을 논했다. 아무리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해도 인문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철학적 주제가 핫 이슈가 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샌델 교수 자신도 꿈도 안 꿨다는 우리 사회의 ‘샌델 신드롬’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 시점에 ‘정의’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에 대한 불만과 좌절감,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심리적 반발 때문이라는 샌델 교수의 분석이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강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게 우리 사회다. ‘샌델 신드롬’이 정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10-08-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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