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문화마당] 자유는 생명의 본질이다/현기영 소설가

[문화마당] 자유는 생명의 본질이다/현기영 소설가

입력 2011-01-05 00:00
업데이트 2011-01-05 00:2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무한질주. 모두가 달려간다.

이미지 확대
현기영 소설가
현기영 소설가
우승열패의 이 속도전 속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정신없이 죽을둥 살둥 달려간다. 도대체 이 속도 이데올로기는 우리를 어떤 파국으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속도 이외의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 속에서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실업자들은 양산된다. 일터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혹한 노동력 착취에 시달려야 한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여기에서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일 뿐이다. 이 무한질주의 무서운 속도는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도 망가뜨려 강과 숲, 논밭의 아름다운 풍경을 폭력적으로 뚫고 내달리면서 시멘트의 회색 풍경으로 만들어 버린다. 강이 콘크리트 수로로 만들어지듯. 인간의 자유도, 강의 자유도 없다.

자유는 생명의 본질이다. 강은 자유롭게 흘러야 하고 인간은 강가의 푸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왔지만, 본디는 자연으로부터 왔다. 요즈음엔 인간이 인간을 낳고 기르지만, 과거에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인간을 낳고 길렀다. 내면에 축소된 자연을 늘 간직하고 있는 인간, 그것이 본연의 인간일 것이다.

자연스러운 생각, 자연스러운 행동은 바로 그러한 내면이 만들어 낸다. 4대 강, 그 강들이야말로 인간을 낳고 키워낸 모태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의 형편은 어떤가. 인간은 자유를 빼앗긴 도구적 인간이 되어버렸고, 수만년을 유유히 흐르며 인간을 낳고 키워 온 저 어머니 강들은 무도한 폭력 앞에 흐름의 자유를 잃고 강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앞 강물, 뒷 강물’하고 노래했던 소월의 음률도 더 이상 없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라는 비유도 더 이상 소용없게 될 판이다.

수만년의 유구한 시간이 만들어 놓은 대자연의 질서를 어찌 비틀고 왜곡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어미에게 칼을 들이대는 패륜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질타한 종교인들의 말씀이 가슴을 친다.

도구적 인간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비리에 둔감하고 눈물도 고갈되어 있기 마련이다.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예컨대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심정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타자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아니, 그 슬픔과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공감 없고, 슬픔 없는 세상을 한탄하여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했다. 그것은 내가 가끔씩 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4대 강의 슬픔이 어찌 타자만의 슬픔이겠는가. 저 강들은 타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를 낳은 모태이며, 우리가 도구적 인간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늘 지향해야 할 정신적 지표로 존재한다.

우리가 아무리 눈물에 둔감하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솟을 때가 있다. 예컨대 강둑에 홀로 서서 서편 하늘과 강물 위에 붉게 번진 장엄한 낙조를 볼 때 느닷없이, 까닭없이 눈물이 솟구치는 수가 있다. 우리의 내면에 남아 있던 자연의 조그만 흔적이 몸 밖의 대자연과 제대로 만나는 순간의 감동인 것이다. 내가 저 대자연의 어쩔 수 없는 일부로구나, 하는 자각이 눈물을 솟구치게 한다.

그렇다. 우리는 저 강이 낳은 자식이다. 어머니 강을 방관만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무심했다. 더 늦기 전에 어서 달려가야겠다.

온갖 생명을 보듬은 자연인 저 강들은 자연을 허물어 세운 도시보다 더 잘 꾸며지고 더 아름답고 더 자유롭고 더 평화롭다. 강이 가르치는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 자유와 평화를 본받기 위해서라도 강의 흐름은 손상되어서는 안 되겠다.

어서 가야겠다. 저 어머니 강을 만나기 위해 급히 달려가야겠다.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2011-01-05 30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