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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시골 이야기/공선옥 소설가

[문화마당] 시골 이야기/공선옥 소설가

입력 2011-01-27 00:00
업데이트 2011-01-2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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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운 겨울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여름이 그다지도 뜨겁더니 겨울이 또 이다지도 차갑다. 한여름에 2만, 3만원 나오던 가스비가 이번 겨울 난방비까지 포함하여 무려 27만원이 나왔다. 가스요금 청구서를 들고 추위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덜덜 떨면서 생각하는 것은 저 어린 시절의 나무 때던 아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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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소설가
공선옥 소설가
겨울이면 눈 안 오는 날은 언제나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새끼줄도 아까워 칡넝쿨로 나무를 묶어서 여자는 머리에 이고 남자는 지게에 져서 부엌 나무청이나 헛간에 나무를 부렸다. 그래서 겨울산은 인근 마을 사람들로 늘 사람 소리, 사람 냄새, 사람 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찌나 갈퀴로 긁어댔는지 겨울산 바닥들은 마치 맨살처럼 반들반들했다. 물론 누군가는 반들반들한 것을 두고 ‘바닥에서 피가 나도록 긁어댔다.’고 표현했지만.

겨울산을 ‘피가 나도록’ 긁어야 했던 것은 한겨울에 얼어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가스비 때문에 가슴이 ‘애려’ 피눈물이 날 판이다. 그 시절은 적어도 난방비용 나갈 걱정으로 가슴 쓰릴 일은 없었으니, 지금보다 속은 편했던 시절이었음에 틀림없다.

그 속 편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마침 시골 친구집에 갔더니, 웬걸, 여기는 아예 동토의 왕국이다. 왜 불을 때지 않느냐 했더니 불 땔 아궁이 없어진 지가 언제냐고, 기름값 무서워 겨울 내내 온 식구가 그나마 싼 전기장판에 의지해 산다며 돈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추위 견디는 게 낫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시골의 난방 사정 말이 나온 김에 우리나라 시골의 전반적인 삶의 기반 문제로 화제가 옮겨갔다.

‘도시가스’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 우리나라 거의 모든 시골에는 도시 주택에서 비교적 싸게 쓸 수 있는 난방용 가스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 가스가 공급될 수 있는 시설 자체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보다 훨씬 비싼 난방 비용을 지불하며 살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노인층인 시골은 그래서 겨울이면 난방비 아까워서라도 노인들이 마을회관에서 ‘합숙 아닌 합숙’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시골의 문제 중에 또 하나는 물 문제다. 옛날에는 사철 맑은 물이 샘솟는 마을 공동샘이 있거나 각 가정이 우물을 파거나 해서 식수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잘 나오던 마을 공동샘도 물이 말랐거나 쓸 수 없거나 하고 우물 또한 오염됐거나 메워진 지 오래다.

마을샘과 우물을 더 쓸 수 없게 된 시점이 언제부터였을까. 내 기억으로는 마을에 상수도를 놓은 뒤부터였던 것 같다.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계곡물을 탱크로 모아서 관을 이용해 각 가정에 보내는 시설을 만든 이후부터 사람들은 공동샘에 갈 일도, 우물을 팔 일도 없어졌다. 상수도물을 쓰면서 편리한 점은 있지만 이제 가뭄이 들면 대책이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고 방치된 공동샘은 더러워졌고 우물을 파도 그 물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한 짐승의 핏물이 나올까 걱정스러운 판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인 에너지와 물 문제가 작금의 우리나라 시골에서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 되어 있다.

도시의 난방 문제, 외국 아프리카의 더러운 식수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은 봤어도 나는 한겨울 시골의 난방 문제, 시골의 물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을 최근에 본 적이 없다. 시골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대신에 그들은 어디에 어떻게 도로를 건설하고 어디에 어떻게 무슨 공장을 끌어오고 어디를 어떻게 개발하고…, 그런 말만 한다.

그나저나 4대강을 파고 강 주변을 개발하려는 이유가 만성적인 물 부족을 해결하려고 그런 것이라는데, 또 누구는 강을 깊이 파면 그나마 주변의 지하수도 강 쪽으로 흘러가서 지하수 고갈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정치하는 사람들이 과연 시골에 관심이나 있는지 나는 그것이나 먼저 좀 알고 싶다.
2011-01-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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