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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고시원과 포스트잇/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문화마당] 고시원과 포스트잇/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입력 2011-06-30 00:00
업데이트 2011-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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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대학원에서는 영화학 전공). 많은 법대생들이 그러하듯, 한때는 고시원에 들어가 고시 준비를 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우리 시대에 고시원 하면 ‘신림동’이었고, 그곳엔 고시에 청춘을 거는 고시생들이 많았다. 나는 고시원 대신 집 근처의 독서실과 공공도서관을 선택했지만, 한때 고시를 보기 위해 밤샘공부로 지내던 세월이 내게도 있었다. 그래서 고시원 하면 당연히 치열하게 고시 준비를 하는 사람들, 희망과 막막함, 열정과 우울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그런 분위기가 연상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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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그런데 요즘 고시원에는 고시 준비생들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혹은 각자의 사연으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올 여름 100억원짜리 블록버스터 ‘퀵’을 연출한 조범구 감독도 고시원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조범구 감독은 2004년 ‘양아치어조’로 장편영화 감독 데뷔를 하고 2006년 ‘뚝방전설’을 만들었다. 새달 21일 개봉하는 ‘퀵’은 그의 세 번째 영화다. 단편영화계 스타이기도 했던 그에게도 역시 영화판은 녹록지 않아 ‘뚝방전설’을 만든 뒤 5년간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다. 서울 생활이 어려웠던 그는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값싼 집값’ 때문에 이사했고, ‘퀵’의 감독을 맡으면서 지방의 집을 오가기 어려워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작비 100억원대 영화가 만들어지고 화려하게 조명되는 영화계의 생리상 자칫 간과되기 일쑤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는 영화인들이 많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지난 1월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으로 환기되었지만, 아직까지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영화인들의 처우와 복지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활발해지고 국회와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예술인 복지법’이 지난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결되고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데, 이 법은 영화·공연·출판 등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들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및 금고를 설치하여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법이 시행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우선 정부 여당에서 예술인 규정에 대한 기준의 모호성과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법을 유보하기로 했다. 대신 이 법을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그 전에 영화사나 방송사에서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스태프를 고용하는 불공정 관행부터 바로잡기로 했다고 한다.

제도를 정비하고 법을 제정하는 작업은 세심하고 정밀해야 한다. 법의 허점과 사각지대를 최대한 줄이고 보완해야 그 법의 취지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조금 시일이 걸린다한들 못 참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영화를 포함한 예술현장의 여론을 청취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소통이다.

영화계 현실이 어렵고 영화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린다 해도 그들의 작품을 향한 열정은 결코 위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감동적이다.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열정이 얼마나 치열하고 대단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안재훈 감독은 이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는 데 11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었고, 그 과정이 그의 작업실 벽면은 물론 천장까지 거의 빈틈없이 빼곡하게 붙여진 수많은 ‘포스트잇’ 속에 담겨 있었다.

3차원(3D) 애니메이션이 대세인 지금, 2D 셀 애니메이션으로, 그야말로 일일이 직접 그린 10만장의 ‘손그림’으로 완성한 이 작품은 만든 이들의 정성과 인내 그리고 긴 제작시간을 관통한 열정의 몫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열정은 ‘야심’이 아니라 ‘진심’의 발로이기에 더 소중하다. ‘소중한 날의 꿈’은 그 진심의 값어치를 발견하게 해준다.

2011-06-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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