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우 체육부 기자
돌아가신 지 10년도 넘은 두 분은 생전에 일본에서의 생활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족의 일대기를 써 오라는 숙제 때문에 꼬치꼬치 캐물었을 때 몇 마디 들은 게 전부다. 그때도 두 분은 협조적이지 않으셨다. ‘기억하기 싫은데 왜 계속 물어보느냐.’는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두 분은 축구 한·일전은 꼭 챙겨 보셨다. 자세는 늘 똑같았다. 국민의례가 진행될 땐 두 눈을 감았고, 경기가 시작되면 소파에 기대어 앉아 두 주먹을 불끈 쥔 채였다. 골을 먹었을 땐 작지만 긴 탄식을 내뱉었고, 골을 넣었을 땐 두 팔을 파르르 떨며 들어 올리셨다. 한국이 지거나 비기면 그걸로 끝이었고, 한국이 이겼을 땐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꼭 용돈을 주셨다. 두 분에게 한·일전은 축구가 아니라 전쟁이었고,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축구기자 생활을 한 지도 2년이 다 돼 간다. 일반적인 A매치 현장에서는 국민의례에 동참하지 않는다. 응원이 아니라 취재하러 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한·일전만은 예외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필승을 기원한다. 한·일전은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전주월드컵경기장에 한 팬이 내건 ‘지진 축하’ 문구가 논란이다. 중계도 하지 않는 방송사가 합성한 사진을 내보내고, 이동국의 ‘퍼펙트 해트트릭’을 외면했다는 등의 볼멘소리는 어디까지나 변명일 뿐, 잘못을 덮을 순 없다. 잘못했으면 다른 핑계 찾지 않고 사과하는 게 맞다. 그게 반인륜적 범죄에도 진심어린 사과 없이 독도마저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저들과 우리의 차이다. 전북 구단은 잘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2011-10-01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