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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러브레터/주병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러브레터/주병철 논설위원

입력 2011-11-15 00:00
업데이트 2011-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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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지긋이 든 분들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고목나무에도 꽃이 핀다고.’ 늙어도 청춘이요 사랑이란 얘기다. 청춘,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사랑, 죽음처럼 강한 것이라고 한다. 편지가 인생의 보물이라면 그중에서도 러브레터는 최고의 보물이란다. 러브레터는 인생의 숭고한 절차 중 하나다. 러브레터는 나이가 들면서 연인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바뀌는 야릇한 속성이 있다.

러브레터 쓰기 캠페인을 벌인 오타 구신은 ‘인생에서 최고의 러브레터’라는 책에서 “최고의 러브레터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사의 편지”라면서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는 것은 당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15살 소녀에서 95세 할머니까지의 러브레터가 있다. 일본의 유명한 가인(佳人) 사이토 모키치는 예순 때 서른살 연하의 연인에게 “지하 다방에서 커피를 한잔 시킨 뒤 (곱게 종이에 싸서 지갑에 넣어둔) 당신의 사진을 꺼내어 빨려들어갈 듯 바라보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1875년 파리의 화가 마르셀 레쿠루르가 애인인 마드렌에게 보낸 러브레터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간단한 것이었다. 편지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흔해 빠진 말을 180만 5000번이나 되풀이해 쓴 것이었다. 이 숫자는 그해의 연호에다 1000을 곱한 것이었고 대서인을 시켜서 쓴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180만 5000번 써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라 이 사랑의 말에 혹한 레쿠루르가 한마디씩 입으로 말한 것을 대서인이 그때그때 받아 적은 것이었다. 사랑의 속삭임이 이렇듯 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고백된 일은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다(R L 리플레/믿거나 말거나).

독신주의자요 마흔에 가까운 노처녀인 B사감이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러브레터였는데, 기숙생에게 온 러브레터를 들고 감미로운 연애장면을 혼자서 연출하는 모순된 성격을 사실적으로 그린 현진건의 단편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는 러브레터의 지독한 패러독스를 보여준다.

북한이 지난 8월 세계 전직 국가수반들의 모임인 ‘디 엘더스’(The Elders)에 남북정상회담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고 한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남쪽 몰래 디 엘더스에 러브레터를 보낸 것이다. 러브레터는 보내는 사람의 진정성과 받는 사람의 수용성이 중요한데, 북한이 남한을 제쳐두고 굳이 디 엘더스를 통한 게 생뚱맞아 보인다. 이래저래 북한의 러브레터는 우리에게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2011-11-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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