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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영웅을 위하여/이순녀 국제부 차장

[지금&여기] 영웅을 위하여/이순녀 국제부 차장

입력 2011-11-19 00:00
업데이트 201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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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녀 국제부 차장
이순녀 국제부 차장
평소의 단정한 외모나 당당한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목 보호대와 휠체어에 의지한 그녀는 작고, 초라했다. 며칠 전 외신에 등장한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 얘기다. 1년 전까지 최고 권력자였던 그녀는 신병치료를 위해 출국하려다 선거 조작 및 뇌물 수수 의혹과 관련한 출국금지 조치로 공항에서 제지됐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돼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그녀는 국민 영웅이었다. 전직 대통령 아버지에 미국 유학파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998년 필리핀 최초 여성 부통령에 당선됐다.

2001년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민중 봉기로 축출되자 대통령직을 승계해 코라손 아키노에 이어 두 번째 여성 대통령에 올랐고, 과감한 부패 척결과 빈곤 추방, 정치제도 개혁 등을 실시해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2004년 대선에서도 40%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 부정 의혹이 불거지고, 연달아 뇌물 사건이 터지면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대통령에서 물러나자마자 수사 대상이 됐다.

영웅으로 출발해 역적으로 끝난 지도자는 세계 역사에서 한둘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한달 전 사망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다.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 영웅에서 42년간 권력을 독점한 악랄한 독재자로 전락한 그는 시민군의 손에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아로요나 카다피나 이런 비참한 운명을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 역시 누구나처럼 떠날 때 박수받는 지도자를 꿈꿨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 어느 순간 권력욕으로 변질돼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궤도를 이탈해 무한 질주하는 데도 이를 깨닫지 못한 결과는 이렇게 참혹하다. 영웅이었기에 스스로 장기집권을 합리화한 어리석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에서 지도자들이 교체된다. 시작은 조금 부족해도 아름다운 뒷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진정한 영웅의 등장을 기다린다.

coral@seoul.co.kr
2011-11-1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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