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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窓] 감정 다루는 법/오동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생명의 窓] 감정 다루는 법/오동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11-11-26 00:00
업데이트 2011-11-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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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동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오는 환자들을 상담하다 보면 감정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환자들은 두려움, 슬픔, 그리움, 분노, 원망 등 소위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래서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인들 중에도 감정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감추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남자들은 강하게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받아왔다. 원시시대부터 남자들은 감정을 노출하면 나약하게 보이고, 서열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불안, 두려움, 슬픔 등의 감정은 전사나 사냥꾼 역할을 맡아야 했던 남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습성이 되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감정을 표현하는 데 미숙하다. 감정을 노출하는 것을 자존심 상한다고 싫어한다. 사랑보다는 자존심이 더 중요한 세대이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는데, 쿨하게 잊지 못한다고 자신을 나무라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지금은 사랑 타령을 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기 때문에 헤어진 애인에 대한 그리움을 없애 달라고 필자에게 요구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실연을 당하면 빨리 잊기를 원한다. 구질구질하게 감정에 얽매이는 꼴이 한심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불만을 표현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우울증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항상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감정을 느끼는 뇌는 변연계로 뇌의 안쪽에 위치한다. 뇌 안쪽에 있을수록 진화과정 중에 먼저 생긴 기관이다.

그래서 변연계를 고(古)포유류의 뇌라고 부르기도 한다. 태고의 뇌가 발달한 후에 고등동물에게는 대뇌피질이 발달해 있다. 인간과 영장류는 뇌의 겉부분을 이루는 대뇌피질이 크게 발달해 있다. 대뇌피질은 이성적인 판단을 주로 담당한다. 변연계에서 느끼는 감정을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이렇게 원초적인 기원의 감정이 일어나면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한다. 감정이 격해져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별일 아닌 일로 울컥해서 친구나 아내를 죽이기도 한다. 감정은 우리가 환경에 적응하는 데 방해를 하는 듯하다.

그러나 감정이 없다면 즐거움도 없고, 의욕도 없어진다. 마치 바위처럼. 식물도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즐거운 음악을 틀어주면 야채 등의 수확이 많아지고, 더 아껴주고 사랑해 주면 화초가 더 잘 자란다. 그러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까? 화가 나는 감정을 억누르고, 그리운 감정을 아닌 척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내부로 파고들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감정을 현실적 목표를 이루는 데 방해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감정은 없어지길 바란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가족이 죽어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그만 슬퍼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슬픔은 그만두겠다는 의지로 없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이성보다 더 원시적이다. 즉, 더 본능에 가깝다. 생리적인 현상과 비슷하다. 배고픈데 배고프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배가 불러지는가? 배가 고플 때는 음식을 먹고 배고픔을 달래줘야 된다. 슬퍼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도 슬픔이 없어지지 않는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스스로 그 감정이 풀어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분노와 그리움, 불안도 마찬가지다. 없어지라고 주문을 외운다고 부정적인 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감정을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부르는 방식도 잘못이다.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필요한 감정이다. 생리적인 현상과 같이 그렇게 느껴야 될 필요가 있어서 느낀다.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여야 한다, 그 감정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2011-11-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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