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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한류와 레이디 가가/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마당] 한류와 레이디 가가/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2-04-12 00:00
업데이트 2012-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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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기억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어느 날 짝이 음반 한 장을 들고 왔다. 주다스 프리스트였다. 모든 음반이 불타고 달랑 한 장 남았다며 피식 웃었다. 집에서 이런 난잡한 음악을 들으면 대학도 못 가고 폐인이 된다며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다. 이해하진 못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며 웃어넘겼다. 그렇다고 우리는 집을 나가겠다거나 비뚤어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헤비메탈 음악을 더 열심히 들었다. 그 후로 친구는 대학에 진학해 학군단 장교가 되었다. 대기업에 입사해 결혼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현재 학원 사업을 하는 어엿한 가장으로 매주 아이들과 캠핑을 다닐 만큼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2012년 2월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콘서트에서 주다스 프리스트를 만났다. 20년도 더 된 추억을 공연장에서 끄집어내면서 40대의 두 남자가 감회에 젖었던 일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하지 말라고 성화를 부렸던 어르신 덕에 무엇이든 더 깊이 있게 알려고 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 참 고맙게 여겨진다. 언뜻 보기에 해롭다고 여기신 것들에 대해 무조건 손사래를 친 것이 어찌 나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하며, 걸러 들었던 삶의 연속이었던 같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가진 10대의 추억은 아마도 그런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학교 앞 만화방에서 도색 잡지를 훔쳐보거나 미성년자 출입 금지였던 동시 상영 영화관에서 에로티시즘 영화를 봤던 것이 인생에서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왔다며 가슴을 치는 40대가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그러한 금기의 영역을 넘나들며 호기심과 상상력들을 키워냈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삼은 예술가들이 참으로 많은데 말이다. 어떠한 일탈도 허용하지 않고 공부만 했던 10대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혜안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레이디 가가 공연이 만 18세 미만 관람 금지 판정을 받은 것은 재미난 일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레이디 가가의 공연 등급을 이같이 판정한 것은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레이디 가가의 노래 ‘저스트 댄스’를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했고, 이 노래가 공연 레퍼토리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유해매체로 지정된 문제의 가사는 ‘나 오늘 좀 많이 마신 것 같아.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하네. 흔들리는 춤 속으로 달려들어 내 술이 없잖아.’였다.

또 공연 영상들의 선정성이 도를 넘었다는 것도 이유였다. 더 재미난 것은 레이디 가가의 아시아 6개 공연국 가운데 유해 공연 판정을 받은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2009년 그녀의 내한 공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다.

분류의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로 남는다. 2008년 여름 잠실에서 열린 메릴린 맨슨 무대와 지난달 주다스 프리스트의 공연은 청소년 무해 판정을 받았다. 광기 어린 독설과 공격적인 가사는 오히려 레이디 가가의 선정성을 뛰어넘고도 남지만 일관성과 형평성에 상당한 의혹을 남기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낯뜨거운 광고를 즐비하게 방치한 것에 비하면 차라리 세계의 트렌드를 잡아낸 한 아티스트의 무대 퍼포먼스를 보도록 하는 것이 떳떳해 보인다.

이 같은 판정에 레이디 가가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무엇이 좋은 결정인지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알렸다. 전 세계 2000만명이 넘는 그녀의 팔로어들이 이 글을 보았으니 의미심장하다.

K팝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누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가 경쟁력의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고 지원책을 내놓겠다는 마당에 이 같은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불신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한류라 떠들고, 위해라 눈을 감는 오늘의 잣대가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예능은 행정의 잣대가 아니라 감성의 안목이어야 한다.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2012-04-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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