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종이 ICBM’ 논란/구본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종이 ICBM’ 논란/구본영 논설위원

입력 2012-04-24 00:00
수정 2012-04-2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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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스커트를 입은 북한 여군들의 행진은 다시 봐도 생경했다. 무릎을 쭉 편 채 다리를 치켜 올리는 ‘거위 걸음’이 그랬다. 주형으로 찍어 낸 듯한 군기의 과시가 여성성과는 왠지 부조화스럽게 비쳐서다. 지난 15일 TV를 통해 김일성 광장에서 펼쳐진 군사 퍼레이드를 보고 느낀 소회다.

북한군이 평소 제식훈련을 거쳐 선보이는 ‘정보(正步) 걸음’은 영어로 ‘구스 스텝’(goose step)으로 불린다. 이 걸음걸이는 18세기 중반 프로이센 군대가 처음 도입했다고 한다. 이후 히틀러 정권은 나치 군대의 위용을 과시하는 시가행진 때마다 이를 애용했다. 북한은 올해 김일성 100주년 생일을 맞아 대외적으로 강성대국의 위용을 과시하려 했던 모양이다. 오와 열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병사들의 행진뿐만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공개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의 그런 의도는 성공하지 못한 인상이다. 북한의 조악한 군사기술 수준이 국제사회의 도마에 오르면서다. 특히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21일 북한이 공개한 신형 ICBM이 종이로 만든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 데이비드 라이트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미사일이 종이를 여러 겹 발라 만든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한 것이다. 공개된 신형 미사일 6기의 사진을 판독한 결과 동체 표면의 전선용 관의 설치 지점과 미사일 고정 벨트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는 게 그 근거다.

물론 ‘종이 ICBM’은 가능성이 커 보이진 않는다. 한 군사전문가는 “종이 모형으로는 이번 열병식에서 보여 준 중량감을 보여 주기 힘들다.”는 시각을 표명했다. 정부 당국자는 “금속 등으로 만든 모형을 등장시켰을 순 있으나, 종이로 만들 정도로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나 여타 국가도 군사 퍼레이드에서 모형 미사일을 공개한 사례가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까닭에 근거가 약한 ‘종이 ICBM설(說)’로 북한을 종이 호랑이로 보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 같다. 필드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지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보유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순 없지 않은가. 다만 광명성 3호 발사 실패에 이어 북한 지도부로선 이번 논란으로 스타일을 구긴 꼴이다. 북한처럼 ‘구스 스텝’을 애용하던 나치 독일은 세계 최고의 군사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결국 2차 대전에서 패망했다. 북한 지도부가 보통 주민의 배만 곯릴 뿐 선군정치로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우쳤으면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2012-04-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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