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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 밥상과 창의력/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밥상과 창의력/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자문위원

입력 2012-07-16 00:00
업데이트 2012-07-1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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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 초기에는 한국식으로 서둘러 점심을 끝낸 후 나머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고역일 때가 많았다. 프랑스의 점심시간은 공식적으로 2시간이다. 주말이나 저녁 식사는 더 길다. 비즈니스로 저녁을 할 때도 보통 오후 7~8시쯤 시작해서 밤 12시 가까이 되어야 끝나기 일쑤다. 저렇게 먹고 즐기면서 언제 일을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속도와 무한경쟁을 무슨 전쟁터의 구호처럼 외쳐대는 글로벌 시대를 조롱하듯 프랑스인들은 느긋하게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즐기고, 와인을 음미하며 다양한 주제들을 식탁 위에 올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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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를 해야 한다. 사람도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행위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하지만, 사람이 먹는 이유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바로 맛이란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입에 달고 살지만, 막상 맛의 정체가 뭘까 하는 데 생각이 이르면 쉽게 감이 오지 않아 당혹스러운 게 또한 맛이다. 맛이란 단어는 친숙한 만큼 모호하고, 모호한 만큼 신비롭기조차 하다.

국어사전에는 맛을 ‘물건을 혀에 댈 적에 느끼는 감각, 사물에 대한 재미스러운 느낌,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 느낌’ 등으로, 프랑스의 프티 로베르 사전에는 ‘오감 중 하나를 통해 감지하는 느낌, 음식의 맛, 어떤 음식에 대한 끌림, 좋고 아름다운 것 등에 대한 판단이나 감정, 특별히 좋아하는 것’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위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맛이란 단지 먹고 마시는 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 그리고 심지어는 미적 감각까지를 어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맛이란 결국 이성이나 논리의 범주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느껴지고 감지되는 감정이고 감흥인 것이다. 하지만 맛은 직관을 통해 인간을 어떤 깨달음의 경지로 이끌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맛의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맛이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심오하고 광대하기에, 라이프니츠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맛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맛 혹은 맛의 비판을 ‘미학’이란 이름으로 철학에 편입시킨다. 맛으로부터 미학이 탄생한 것이다. 맛의 철학은 칸트에 이르러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그에 따르면, ‘맛에 대한 분별력은 인간의 독립성과 도덕적 자유의 상징에 대한 하나의 표현’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런저런 맛을 접하게 된다. 어머니의 손맛에서부터 다국적 거대 식료품기업의 수많은 제품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양하고 새로운 맛에 길들여지며 살고 있다. 효용성과 결과·속도만이 가치의 척도가 되어버린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에 부합하는 규격화된 맛의 대명사인 패스트푸드의 전성시대에, 맛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다른 어떤 사회적 담론이나 철학적 주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주희의 근사록에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 가운데서 언어와 식음 이상의 것은 없다.’란 대목이 나온다. 세월이 한참 흐른 오늘날 더욱 곱씹어 볼 가치가 있지 않은가!

이쯤에서 프랑스의 식문화에 대한 나의 의문은 베일을 벗는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이와 어울리는 와인을 천천히 즐기는 행위는 언뜻 시간의 낭비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맛을 느끼고 즐기는 행위는 그것 자체가 감각을 깨우는 훈련이요, 창의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여기에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 간의 대화와 토론은 창의력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맛에 대한 각자의 표현과 반응은 곧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드러내는 대단히 중요한 행위이다.

뒤늦게나마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당국에 제안하고 싶다. 창의성 교육을 밥상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맛의 날’을 제정해서 일찍부터 맛에 눈뜨게 하면 어떨까? 왜냐하면 프랑스의 창의성은 밥상으로부터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2-07-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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