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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窓] 아기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생명의 窓] 아기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입력 2012-12-08 00:00
업데이트 2012-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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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강사
신의 속성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랑’만 한 게 또 있을까. 한데 사랑에도 ‘주는 사랑’이 있고 ‘받는 사랑’이 있으니, 신의 사랑은 과연 둘 중 어느 쪽일까. 대부분 ‘주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인들의 기도를 들어 보면 거의가 그렇다. 모두들 세상에 나오기 전 그분께 대단한 것을 맡겨 놓기라도 한 듯이, 아니면 그분이 자기에게 엄청난 빚이라도 진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달라’고 보챈다. 신은 주고 인간은 받는다는 게 신앙의 정석처럼 돼 있다.

하지만 13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으로, 이른바 유네스코 지정 시인의 반열에 오른 잘랄앗딘 루미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보기에는 ‘받는 사랑’이란다. 신은 피조물의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다.

이 명제가 왜 낯설까.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인간은 신께 언제나 자기를 사랑하라고만 요구하는가. 사실 내 ‘시커먼’ 속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구석은 고사하고 자격도 없는 게 정직한 내 꼬락서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간단치 않다. 신이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셨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하느님이다. 이 그림은 신에 대한 신화적 상상력을 단박에 뒤집어 엎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신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처럼 신령한 할아버지로 그리는 버릇이 있기에. ‘전능한 신’이라면 적어도 그쯤은 돼야 제격이라고 믿는다. 이 통속적인 이미지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기 예수다.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조차 전혀 없는, 돌보는 이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금방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한없이 무력한 아기.

독일의 생태철학자 한스 요나스가 ‘하느님은 신생아’라고 말했을 때,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생각도 루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막 태어난 신생아에게 필요한 것은 전적인 사랑과 돌봄이다. 인간에게는 신생아를 보살필 ‘무한 책임’이 있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갓난아기로 고백한다는 말은 하느님의 생명력이 인간의 사랑 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이겠다.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해 드려야 비로소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고 실현된다.

하여 크리스마스는 인간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하느님의 SOS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느님이 제발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신호다. 한데 곰곰 생각해 보면 올해도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다. 하느님 대신에 돈을 사랑했고, 권력을 사랑했으며, 하느님 대신 전쟁을 사랑했다. 심지어 내 욕망을 충족시키고 합리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팔기까지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그분을 모른 체하고, 무시하고, 버리고, 십자가에 매달기를 반복하고도 스스로 무슨 짓을 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런 내가 미울 법도 한데 구유에 누운 아기 하느님은 연신 웃음꽃이다. 아하, 그래서 노자 역시 도(道)를 갓난아기에 비유했고, ‘열반경’에서도 보살의 수행법 가운데 영아행(?兒行)을 으뜸으로 치는가 보다. 갓난아기는 잘생긴 사람이든 못생긴 사람이든,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강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웃어 준다. 그 마음에 분별심이 없으므로 모두를 평등하게 대한다.

바야흐로 대림절, 곧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다. 그리스도인의 새해는 기다림에서 시작된다. 그 기다림의 끝에 아기 하느님이 계시다. 높으신 하느님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낮고 천한 자리에 임하신다. 2000여년 전 아기 하느님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 성모 마리아의 협력이 필요했다면, 오늘 그분은 누구의 몸을 통해 육화(肉化)하기를 원하실까.

마리아의 노래(누가복음 1장 45~55절)에 해답이 있다. 자기를 세상의 작고 약한 것들과 동일시할 줄 아는 사람, 매순간 자기의 욕심은 비우고 신의 자비가 드러나도록 깨어 있는 사람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신을 낳는 삶, 곧 ‘신나는’ 삶을 살고 싶다.

2012-12-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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