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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오답노트/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오답노트/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3-04-02 00:00
업데이트 2013-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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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기사들은 대국이 끝났다고 그냥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법이 없다. 꼭 복기(復棋)를 한다. 어떻게 이겼는지, 왜 졌는지를 꼼꼼하게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그들은 마음속으로 벌써 다음 대국을 준비한다. 이를테면 요즘 수험생들 사이에 유행인 ‘오답노트’를 바둑판에서 그려보는 셈이다.

조선 최고의 재상으로 꼽히는 서애(西厓) 유성룡이 임진왜란 이후 고향 안동에 내려가 쓴 ‘징비록’(懲毖錄) 또한 왜란을 겪은 서애가 심혈을 기울여 쓴 오답노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대비를 못해서 큰 난리를 당했으나 후손들은 환란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환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쓴 글이 바로 징비록이다. 서애는 임진왜란 1년 전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말직에 있던 이순신과 권율을 발탁하고, 도주하기에 바빴던 선조 대신 정치·군사·외교 등 국정 전반을 책임지며 뛰어난 지략을 발휘해 전란을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시험에서도, 인생에서도, 국정운영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실수에서 교훈을 찾는 현명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이들도 있다. 4일로 취임 100일 을 맞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70%에 이른다. 극단적인 우경화 정책 등으로 이웃 나라들에는 인기가 없지만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와 함께 검증된 인사 중용 등으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오답노트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2007년 1기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여러 권의 노트에 집권 당시의 문제점을 빼곡히 정리했는데 부인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그걸 틈틈이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그는 집권 1기 시절 측근들로 내각을 채워 ‘친구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2007년의 그 아베가 아니다. 그의 오답노트엔 잘못된 인사 때문에 국정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모했다는 자성이 적혀 있다고 한다.

출범 한 달이 조금 지난 박근혜 정부가 인사 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여당으로부터도 거센 비판을 받을 정도다.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청와대 대변인이 비서실장을 대신해 ‘이중 대독(代讀)’ 사과를 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번 기회에 전반적인 인사 검증 시스템과 대통령의 나홀로식 인선 방식의 문제점을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보좌진은 지난 1개월을 반성하고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 제대로 된 오답노트를 작성하기 바란다. 아베처럼 자신의 과오를 냉정하게 분석한다면 이번 일은 향후 국정 운영에 ‘약’이 될지도 모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3-04-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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