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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사극의 책임감/임형주 팝페라 테너

[문화마당] 사극의 책임감/임형주 팝페라 테너

입력 2013-04-04 00:00
업데이트 2013-04-0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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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 팝페라테너
임형주 팝페라테너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2년 전에는 조선시대 인물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장옥정을 새롭게 조명한 ‘임형주, 장희빈을 부르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책을 내기 위해 조선왕조실록의 숙종실록, 연려실기술 등 많은 자료를 찾고 연구하면서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는 사극의 열혈 시청자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시절에도, 공연을 위해 해외에 머문 때에도 TV나 인터넷으로 사극을 챙겼다. 한국사를 기반으로 한 사극은 그 자체로, 또 인물 재조명이나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흥미를 자아낸다.

올봄, 방송계에 다시 사극 열풍이 불어서 즐겁다. KBS ‘대왕의 꿈’과 ‘천명’을 비롯해 MBC ‘구암 허준’과 ‘구가의 서’,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JTBC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 등 인기리에 방영 중이거나 방영을 준비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퓨전 사극, 판타지 사극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사극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실존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고 현대적인 요소를 넣은 ‘팩션(팩트+픽션) 사극’도 쏟아진다. 사극을 좋아하는 시청자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팩션 사극은 매우 신선했다. 역사적 기록이 지극히 짧은 인물, 또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했다. 2003년에 방영한 ‘대장금’과 ‘다모’가 시작점이 될 듯하다. 정통 사극에서 보이던 딱딱한 ‘고어(古語)체’에서 벗어난 부드러운 어법을 사용하고, 의상에도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이런 경향은 ‘해를 품은 달’(2012)까지 이어졌고, 사극을 더욱 가깝게 느껴지도록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접한 뉴스는 조금 황당했다.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요즘에나 볼 수 있는 웨딩드레스가 등장한 것이다. 정통 사극을 표방한 그 드라마에서 면사포를 쓰고 치마를 부풀린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나왔다니 당혹스럽다. 방영을 앞둔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또한 의아한 부분이 있다. 예고편과 공식 포스터를 봤더니 장옥정이 쪽머리에 비녀를 꽂은 채였다. 왕가 여성이 가체를 벗을 수 있었던 것은 영조 때다. 장희빈은 앞선 시대 인물이니 가체를 해야 맞다. 이런 문제는 3년 전 방송한 사극 ‘동이’에서도 지적됐던 것이다. 당시 연출자는 “큰머리가 너무 무거워 배우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탈모까지 일으킨다고 해서 배려한 것”이라면서 “사극도 드라마다. 그냥 드라마로 봐달라”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 허구로 보라는 말은 다소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비틀어 보는 시도는 긍정적이다. 그 자체가 ‘바로보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젊은 층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잊어선 안 될 게 있다. 충실한 고증과 책임감이다. 시청자가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허무맹랑한 설정은 곤란하다. 개인의 욕심으로, 촬영의 어려움 때문에, 쉽게 역사적 사실을 내쳐서는 안 된다. 정통 사극을 지향한다면 더욱 지켜야 한다. 단순히 화제와 시청률을 좇을 게 아니라, 재미와 고증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한 제작진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한 조사에서 드러난 방송매체의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고증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의무이고, 열혈 사극팬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다.

2013-04-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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