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선거와 착시, 그리고 언론/나은영 서강대 신방과 교수·사회심리학 박사

[옴부즈맨 칼럼] 선거와 착시, 그리고 언론/나은영 서강대 신방과 교수·사회심리학 박사

입력 2012-05-02 00:00
업데이트 2012-05-0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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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면 항상 “그랬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결과를 알기 전에는 민심에 대한 주관적인 지각에 의존하다가, 결과를 알고 난 후에 비로소 진짜 민심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잘못 지각하는 ‘착시’ 현상은 객관적 판단을 흐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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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선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결론을 얻기 때문에, 그 과정에 사회심리가 작용한다. 투표는 개개인이 하지만,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할 때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한 나의 지각’이 상당한 영향을 준다. 여기에 개입되는 착시 현상 중 하나가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효과다. 이는 “실제로는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만 다르게 생각한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사회심리학자 프렌티스와 밀러 교수는 학생들에게 ‘본인’이 얼마나 음주를 즐기는지, 그리고 ‘다른 프린스턴 학생들’은 얼마나 음주를 즐긴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실제로는 본인처럼 음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다른 학생들이 많음에도, 실제보다 더 많은 다른 학생들이 음주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다원적 무지’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백인들이 1960년대 흑백분리정책에 찬성하는 백인 비율을 실제보다 과대 추정했던 사례도 여기에 해당한다.

대체로 ‘변화’의 방향 쪽에 있는 생각에 다원적 무지가 더 잘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이 여론조사에서 응답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심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사례를 찾아보면, 마음속으로는 야당 김용민 후보의 비상식적 발언으로 말미암아 지지 의사를 철회했더라도, 다른 사람들 생각이 자기와 다를 것으로 추측하여 의견 표명을 꺼렸을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다수였던 것이다. 특히 야당 지지자가 다수를 점하는 서울의 유권자들과 트위터 이용자들은 여당을 지지한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고, 이것이 서울의 출구조사 당시 숨어 있던 여당의 표가 최종 개표 결과로 드러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승자는 자만하기 쉽고, 자만이 있는 곳에서 특히 착시가 커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새누리는 더 겸손하고 민주는 더 자성하라”라는 서울신문 4월 13일 자 사설은 핵심을 짚었다. 오만하여 판세를 잘못 지각함으로써 패배를 자초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회창-노무현 후보의 2002년 대선 직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과 함께 당선 가능성을 추가로 물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우위로 나오는데도 그 자체를 당선 가능성의 지표로 삼지 않고 당선 가능성을 추가로 물어 “지지율은 노무현 후보가 앞서지만, 당선 가능성은 이회창 후보가 앞선다.”라고 보도하는 언론들이 많았다. 대통령은 지지율로 결정되는 것이고, 당선 가능성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한 나의 지각’이 포함되기 때문에 착시가 섞인 응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지지율을 믿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당선 가능성을 줄기차게 함께 물었다. 최종 결과는 역시 착시가 아닌 현실을 반영한 지지율로 결정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미래를 향한 변화의 열망을 잘 읽어내는 쪽이 대다수 국민의 ‘실제 의견 분포’를 객관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승리에 다가갈 수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착시를 줄이려면 ‘사람’과 ‘미래’를 보아야 한다. 신문에도 ‘그 사람들’의 솔직한 ‘미래 비전’을 실어 주면 좋겠다. 언론을 통해, 그리고 대화를 통해 타인들의 의견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기존 언론은 물론이려니와,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사람들의 의견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언론의 역할을 하는 만큼, 그곳에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왜곡하여 받아들이지 않도록 정화된 글을 쓰는 분위기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2012-05-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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