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마감 후]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24-04-12 00:10
수정 2024-04-12 00:1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지난 4일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에선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 로보틱스, 빅데이터 등을 주제로 한 기술 강의가 40분 단위로 하루 종일 열렸다. ‘꿈을 현실화하는 AI 기술’, ‘더 나은 삶을 위한 AI의 발전-연구실부터 일상생활까지’ 등 강의 개수만 40개였다. ‘LG 테크 콘퍼런스’에 초청된 이공계 석박사 과정 학생 300여명을 위해 회사가 준비한 강의들이었다.

이 중 LG AI연구원의 오후 세션 강의에 들어가 보니 AI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강의실엔 학생들이 꽉 차 있었다. 진지하게 강의를 듣던 학생들은 질문 기회가 주어지자 “AI의 특이점에 대해 회사에선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연구를 하나”, “AI를 디자인, 신약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성공 사례가 있나”, “디자이너들이 AI를 활용할 때 프롬프트(명령어)를 구체적으로 사용하나” 등 질문을 쏟아냈다.

학회처럼 학생들이 자신의 연구 주제나 성과를 소개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학생들이 회사 행사에 초청을 받은 것이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장을 마련해 준 것이다.

주요 계열사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인사책임자(CHO)가 이들을 만나기 위해 총출동했다. 권봉석 ㈜LG 최고운영책임자(COO·부회장)도 행사장을 찾아 학생들과 오찬 겸 대화 시간을 가졌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오찬에선 공대의 미래를 넘어 사업적인 부문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고 한다. 이전의 공학도와는 또 다른 ‘Z세대 공학도’의 넓은 질문 스펙트럼에 배석했던 한 임원은 깜짝 놀랐다고 했다.

LG가 젊은 이공계 학생들에게 문을 활짝 연 건 이들이 회사의 미래이자 경쟁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고 2012년부터 해마다 테크 콘퍼런스를 열었으니 그동안 축적된 풀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한다. 회사 입장에선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연구개발(R&D) 분야 인력 풀을 갖고 있는 셈이다.

회사는 이들이 모두 ‘LG맨’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콘퍼런스 초청장을 전달할 때도 VIP 초대하듯 학생 집으로 초청 키트를 보낸다. 콘퍼런스 이후에도 꾸준히 소통하면서 관계를 유지한다. 이 인연들이 회사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잘 알기에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것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이들을 대한다고 했다.

AI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글로벌 빅테크 간 인재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엔지니어 몸값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내가 본 것 중 가장 미친 인재 전쟁”이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돈을 좇는 엔지니어는 더 좋은 조건이 제시되면 언제든 경쟁사로 떠나게 돼 있다.

국내 기업이 빅테크와 머니게임을 할 게 아니라면 인재 영입에도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안 그래도 이공계 우수 인력이 줄어드는데 눈 뜨고 외국 기업에 죄다 빼앗길 순 없다. 의대 열풍에도 소신을 갖고 묵묵히 연구하는 이공계 학생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도록 기업이 먼저 손을 잡아 주는 건 어떨까. 어느 기업이든 진정성 있게 다가가 비전을 보여 준다면 학생들도 돈이 아닌 꿈을 택할 것이다. S급 인재가 절실하다면 그만큼 기업도 공을 들여야 한다.

김헌주 산업부 기자

이미지 확대
김헌주 산업부 기자
김헌주 산업부 기자
2024-04-12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정치적 이슈에 대한 연예인들의 목소리
가수 아이유, 소녀시대 유리, 장범준 등 유명 연예인들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대한 지지 행동이 드러나면서 반응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연예인이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직접적인 목소리는 내는 것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연예인도 국민이다. 그래서 이는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연예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