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국 동서대 총장
‘두려움’의 감정에 가득찬 국가들로는 과거에 영화를 누려왔던 미국과 유럽 등을 꼽았는데, 이는 자신들의 정체성 혼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모이시 교수는 세계가 앞으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과 같은 현상유지(status quo)가 계속되면 대재앙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문제 인식을 가지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변화’를 모색하여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모이시 교수의 논리는 국제정치학적인 관점에서 논한 것이지만, 우리네 정치 현실과 꼭 들어맞는 구석이 많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이명박 정부는 누가 뭐라든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틈만 나면 ‘더 큰 대한민국’을 외친다.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공황 속에서도 재빠르게 회복하고 있고, 11월에는 선진국들의 모임인 G20 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될 정도로 한국의 세계적 역량이 커지게 되었다며 국민의 기대를 잔뜩 부풀리고 있다. 4대강 사업은 강행되고 있고, 이는 관광자원의 개발과 함께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큰 공헌을 할 것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야권은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4대강 개발사업은 민의를 거스르는 것이고 생태계를 파괴해 환경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더 큰 대한민국’ 또한 한낱 허울에 불과하고, 날이 갈수록 서민경제는 피폐해져 결국 빈부 양극화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잔뜩 ‘겁’을 주고 있다. 내심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 다음 대선에서의 정권교체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김대중·노무현 정권 사람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과거정권을 철저히 짓밟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 되어 버렸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정권을 걸고 추진해 온 대북 ‘햇볕정책’은 이제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한 전임 대통령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모욕’을 당했으니 이를 갈며 다음 기회를 보고 있을 것이 뻔하다.
이러한 세 가지 감정이 지배하는 정치 환경에서는 모든 것이 제로섬(zero-sum) 상태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모든 기회를 총동원하여 상대방을 한방에 날려버리겠다는 공격정치만 난무하는 것이다. 사실 지난주 개최된 국회 인사청문회도 후보자들의 능력과 자질을 검증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실제로는 임명권자를 크게 한방 먹이겠다는 한판의 증오 정치적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 이러한 감정의 정치학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정권을 움켜진 여권은 좀더 과감한 소통을 통해 대다수가 함께 꿈꿀 수 있는 공동의 ‘희망’을 도출해야 하고, 야권은 국민을 겁주는 ‘두려움’의 정치에서 제발 좀 벗어나 선의의 ‘경쟁’ 정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욕’을 느끼고 있는 세력에게도 과감한 화해의 손길을 보내야 자신들도 앞으로 ‘모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주의를 논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러한 감정의 골을 메우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서로 입장만 바뀔 뿐 희망, 두려움, 모욕의 악순환은 지루하게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0-08-31 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