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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늑대와 양떼몰이/오일만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늑대와 양떼몰이/오일만 경제부 차장

입력 2011-06-07 00:00
업데이트 2011-06-0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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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에서 반복됐던 ‘부패 게이트’가 이번 정권에서도 변함없이 재현됐다. 이른바 ‘부산저축은행 게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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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정치부장
오일만 정치부장
한푼의 이자라도 더 받으려는 서민들의 돈이 부패고리의 ‘종잣돈’으로 쓰였다. 예금 인출 과정에서 소외됐던 ‘힘없고, 백없는 서민’들이 원금을 돌려달라고 길거리에 나서는 형국이다. 이들의 분노와 원망이 하늘을 찌른다. 피해를 입은 고객이 2만 7000여명, 피해액은 1조 5000억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공정사회를 전면에 내건 현 정권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파괴력이 감지된다.

과거 게이트와 달리 이번엔 금융권력을 장악한 ‘금피아’(금융감독원+마피아)와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마피아)의 최상위 핵심들이 줄줄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이 크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감독기관 차원을 떠나 정치권과 청와대를 포함한 부패 커넥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밀하고 끈끈하게 얽혀, 정밀하고 교묘하게 작동했던 부패 시스템은 우리 사회의 미래에 짙은 암운을 던진다.

해결 방법은 없는가. 부패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던 중국이 우리의 반면교사다. 중국 왕조의 흥망사를 끈질기게 추적했던 이중톈(易中天) 교수(중국 샤먼대)는 관료들의 부패가 중국 역대 왕조의 생명을 단축한 근본 원인이라고 단언한다.

중국도 온갖 감독·감찰부서를 만들어 관료들을 통제했지만 감독기관과 피감기관이 한통속이 되면 속수무책이다. 마치 도적패의 졸개가 두목에게 훔친 물건을 상납하는 구조다. 그는 관료체제를 ‘늑대(감독)에게 양몰이 개(관료)를 감독하게 하는 것이나 같다.’고 일갈했다. 이번 사태도 감독기관(금감원)과 피감기관(부산저축은행)이 전관예우를 고리로 먹이사슬을 형성, 금융 비리를 확대 재생산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관료제가 부패하는 이치에서 해결책을 찾아보자. 원래 양떼(백성)의 주인은 황제이고 관료는 황제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주인이 아닌 이상, 관료들은 목장의 항구적인 이익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신의 임기 내에 주어진 권력과 기회를 이용해서 한몫 챙기는 것이 최대 관심사다. 이런 이해관계 속에서 감독·피감독 관료들 모두가 운명공동체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공무원 제도가 지연과 학연이란 연결고리 속에서 서서히 부패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중국 춘추시대 최악질 도둑인 도척(盜跖)의 일화를 보자. 그는 도둑의 도(道)로 성용의지인(聖勇義知仁)의 5가지를 들었다. 재물이 집안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을 아는 것(聖)이고, 도둑질 하러 집안에 들어갈 때 맨 앞에 서는 것이 용(勇)이며, 도둑질을 마치고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라고 했다. 장물의 가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지(知)이고, 각자의 몫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인(仁)이라는 것이다. 장자(莊子)의 거협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도척의 도를 이번 부패사건에 적용해 보자. 금감원은 부산저축은행의 부실구조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聖), 그 부실을 앞장서 덮어줬으며(勇), 각자의 몫을 전관예우를 통해 공평하게 분배(仁)한 꼴이다. 다만 누가 ‘총대를 메고’ 이번 비리를 마무리할지(義)는 아직 모르겠다. 이런 신랄한 유머가 술자리에서 울분을 푸는 서민용 안주로 오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문득 한국은행 총재와 경제부총리를 지낸 조순씨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의 고위 관료들의 머릿속에서 국익이란 상위 개념이 사라지게 되면, 결국 사사로운 ‘밥그릇’만 남을 것이라고. 그의 지적은 참으로 탁월한 혜안이었다. 국무총리는 물론 장·차관을 마치고 곧바로 대형 로펌이나 기업의 로비스트로 변신하는 사회 풍토 속에서 건강한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전관예우 근절 역시 우리 관료시스템을 보다 건강하게 유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조만간 우리 사회는 새로운 저축은행 개혁안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 ‘늑대에게 양떼몰이 개를 감시하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금융권력들이 부패에 개입할 수 없는 보다 정교한 금융 감독 시스템이 도입되기를 기대한다.

oilman@seoul.co.kr

2011-06-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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