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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고졸, 뽑아놓고 방치하면 죄악이다/김성곤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고졸, 뽑아놓고 방치하면 죄악이다/김성곤 전문기자

입력 2012-07-27 00:00
업데이트 2012-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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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지방에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이모(50)씨. 그는 중학교에서 상위 10%에 드는, 제법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드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가 인문계가 아닌 상고를 선택한 것은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상고에 진학하면 3년 장학금을 준다.’는 유혹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시 담임교사도 가세했다. 우수 학생을 유치하라는 재단의 독촉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 셋이서 같이 상고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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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편집국 부국장
김성곤 편집국 부국장
하지만 그는 상고에 진학한 뒤 적응을 하지 못했다. 3학년이 되자 인문계 고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고, 대학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취업에 포커스를 맞춰서 공부한 그가 좋은 대학에 가기는 쉽지 않았다. 3년여 만에 대학에 갔지만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상고와는 전혀 무관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곤 했다. 지금은 아예 그 얘기조차 하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공고를 졸업한 B(53)씨. 그는 대기업의 임원이다. 하지만 졸업생 모두가 그처럼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당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수재만 간다는 공고에 진학, 학자금 혜택을 받는 등 최선의 선택인 줄 알았지만 군대에 다녀와서는 곧바로 대학에 진학했다. 고졸로 직장에 입사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의 동기는 대부분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기업들에 고졸 채용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그룹도 올 들어 처음으로 고졸 관리직 700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내년 초 고교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도 이 대열에 가세했고, 오비맥주는 아예 입사 요강에 ‘대졸자 이상’이란 자격요건을 빼버렸다.

국가적으로 고졸 채용을 장려하는 데다가 기업 입장에서도 고졸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력 인플레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우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꿈 많고 가능성이 무한한 고졸자들을 기업이 받아들인 뒤 이들을 인재로 제대로 키워내지 못할 경우, 이들이 겪을 시행착오 등을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옆에서 숱한 ‘고졸신화’를 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물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부인해도 우리 사회에 학력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은행에서마저 대출 때 학력에 따라 이자율을 달리하는 판이니 다른 곳은 오죽하겠는가.

한 공기업 임원은 “과거에 고졸과 대졸을 함께 뽑았는데 일부 고졸 입사자의 경우 회사 내 분위기에 위축돼 스스로 자신의 업무나 인사의 한계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고졸자는 뽑는 것보다 사내 인식을 바꾸고, 이들의 육성 방안을 제도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고졸자들은 취업 때 많은 고민을 한다. 가정 형편 등을 고려해 입사를 선택하지만 올바른 선택인지, 나중에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와서 아버지의 권유로 복학을 포기하고 과감히 고졸 공채로 대기업에 입사한 C(24)씨의 경우 그의 부모가 사흘 동안 싸웠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중에 자식에게 무슨 말을 들으려고 대학도 졸업을 안 시키고 고졸로 취직을 시키느냐.”는 어머니와 “대학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아버지의 의견이 맞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졸자는 이런 고민을 거쳐 입사하게 된다.

고졸자를 뽑아서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다면 안 뽑는 것이 낫다. 이 역시 또다른 측면의 사회적 낭비이기 때문이다.

sunggone@seoul.co.kr

2012-07-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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