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두메산골]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이승훈 두메산골]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입력 2012-09-27 00:00
업데이트 2012-09-2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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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진 채 일자리가 늘지 않는 탓에 서민 생계는 점차 고달퍼져만 간다. 그런데도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경제민주화다.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공약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하루 민생은 어렵기만 한데 선거철 관심은 기이하게도 경제 살리기를 제쳐놓고 경제민주화에만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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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최근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는 심각한 국부의 손상을 입었다. 유로존 위기에 휘말린 유럽도 마찬가지다. 손상 정도가 너무 커 회복은커녕 아직 그 기미조차 안 보인다. 이들 지역의 수입 수요가 눈에 띄게 줄면서 중국 경제의 성장률도 주춤거리고 우리 경제에도 타격이 커 수출이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급기야 지난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았다.

세계 수입시장의 양대 축인 미국과 유럽이 지갑을 닫으면 각국의 기업들은 살아남기 경쟁에 내몰린다. 자국의 자동차 산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한국 자동차 수입을 규제하겠다고 나선 프랑스 정부처럼 각국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한 무역정책으로 회귀할 것이다. 글로벌 수요가 도처에서 위축되는 와중에서 한국 기업들은 수출 판로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여야의 경제민주화 공약 가운데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것이 재벌개혁이다. 총수가 1~2%의 투자지분만으로 50~60%의 의결권을 장악하는 지배구조를 더 이상 보고만 있지 말자는 것이다. 가장 급진적 공약은 순환출자 금지와 금산분리를 요구한다. 그 안대로 되면 재벌체제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 해체를 피하려면 그룹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단일 초대기업으로 합병하면 되는데, 이 경우 총수의 의결권은 투자지분인 1~2%로 위축되고 만다. 그러므로 총수의 관심은 해외시장에서 살아남기보다 경영권 방어를 앞세울 수밖에 없다.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이 재벌 개혁에 전과 달리 나서는 것을 보면 국민의 반재벌정서가 강해지기는 강해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경제개발 역정에서 선두주자로 활약해 오면서 국내 산업을 일으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재벌의 성과를 부정하면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한정된 자원을 선별된 몇몇 기업들에만 집중적으로 지원해온 경제개발 정책이 있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자를 강조하면 오늘의 풍요를 창조한 재벌이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만, 비판적 집단은 후자를 근거로 재벌의 공에 비해 포상이 과다하다고 주장한다. 국가 지원만 충분했다면 누가 했어도 삼성이나 현대 등과 같은 재벌 그룹을 일으킬 수 있었을까? 아니다. 경제개발이 국가지원만으로 된다면 이미 많은 개도국들이 산업화에 성공했을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재벌 창업자들이 한국에서 성취한 경제적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산업화 세대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반면에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개발시대의 어려웠던 과거보다는 현재의 문제점이 더 잘 보인다. 수시로 불거지는 비자금 파동과 일감 몰아주기의 빼돌림이 꼬리를 무는 속에서 반재벌 정서가 가라앉겠는가? 급기야 우리 경제를 둘러싼 주변여건이 총체적으로 매우 어려운데도 선거철 민심마저 경제살리기보다 경제민주화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재벌개혁을 앞세우는 최근의 정치현상은 그동안 완화되지 않던 반재벌 정서가 한 단계 더 강화되었음을 뜻한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강제적으로 재벌 해체를 단행할 때가 아니라고 본다. 글로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재벌기업을 흔들면 경제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보다는 징벌적 배상과 집단소송의 제도를 도입하여 재벌기업 일반주주들의 자기방어권을 강화해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재벌에 감당하기 어려운 소송이 뒤따른다면 총수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행동과 조직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동안에도 재벌개혁 이야기만 나오면 ‘어려운 경제 현황’을 내세워 입막음해 왔지만 현재 경제는 정말로 어렵다.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2012-09-2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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