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한밤중 세탁기에서도 멜로디가 흘러나오지
냉장고에서도 가방 속에서도
심지어 변기에서도
어떤 날은 내가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죽지 않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어떤 날에는 우주로 쏘아올린 시들이 내 잠 속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외계로부터의 답신
당신들이 보낸 것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입니다
이상한 날이 있다. 한껏 공기를 불어넣은 풍선처럼 마음이 떠오르거나 바닥에 떨어진 빨래처럼 몸이 주저앉는 날. 어떤 날은 햇살이 긴 주걱을 들고 겨울 부뚜막에 앉아 흰 죽처럼 끓고 있는 나를 가만히 휘젓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랑이 찾아오고 또 떠나간 날,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끝내 살고 싶은 날들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십여 년 전 북유럽 시인들이 베가 항성을 향해 시를 쏘아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독자들이 보낸 답장이 잠든 사이 우리를 다녀가는 꿈이라고. 이 모든 이상한 일들이 사실은 외계의 소식이라고. 우리는 시인의 말을 믿는다. 아무리 현실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꿈을 꾸고 있는 동안은 몽상가 아닌가. 알고 보면 우리가 만난 때는 모두 꿈속이지 않은가.
신용목 시인
2017-01-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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