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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의 오솔길] 염소

입력 2019-05-13 17:26
업데이트 2019-05-1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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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나비와 벌을 들이받고 /공중을 치받고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쩍 않고 버티기만 하는/저 꽃을 어떻게 불러야 하나 //…뿔을 뽑아내기 위해/근육을 덜어내기 위해 /…/부단히 채찍질을 하였다//…/염소 학교 졸업식 날 /그에게 많은 축복이 있었다 /… 쿠션 좋은 침대를 /… /향을 피워 올리는 검은 향로를/… 낯짝의 거울을/… 근사한 수염을/그리고 우리는 고삐를 주었다’( 송찬호의 시, ‘염소’ 중 부분)

현대사회를 흔히 ‘기술과 자본의 파시즘 시대’라 한다. 무한속도와 무한경쟁이 개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각박한 시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은 유령으로 살아간다. 유령이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비하 혹은 냉소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우리 사회는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 된 지 이미 오래됐다.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면에서 개성 없이 유사한 형태의 생활공간에서 엇비슷한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소수의 예외적 존재들을 제하고는 대다수 사람은 저마다의 욕망 실현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의 사다리를 밟아 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가치의 스펙트럼이 넓지 않고 또 가치의 서열과 위계가 없다는 점이다. 즉 삶의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거나 허락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잘 먹고 잘살 수 있을까 하는 물질적인 욕망의 끝없는 추구에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물질의 척도에 의해 삶의 의미와 가치가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노골적으로 장려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모든 부문에서 승자만이 이익을 독점할 뿐 패자들은 존재감도 없이 유령처럼 살아가야 한다.

지금 교육 현장에서는 자신의 삶의 미래를 유령으로 살지 않기 위해 학생들이 죽음 같은 경쟁의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경쟁은 참혹하다. 경쟁에서 낙오한 학생들 중에는 절망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는 사회적 타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은 개인의 불행일 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재무 시인
이재무 시인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서양 근대는 지식과 권력의 결탁, 즉 이성을 잣대로 인간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 짓고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광기’를 감금해 온 거대한 폭력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에 의하면 초기 근대의 절대주의적 권력은 부정기적이고 비연속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개입하는 형태였지만 후기 근대로 이행하면서 권력은 규율과 훈육으로 사람들을 관리하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형태의 규율, 훈육의 권력은 산업자본주의와 그에 따르는 사회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근대국가의 대표적 제도들인 군대, 학교, 정신병원, 감옥 등을 통해 그러한 권력의 효과를 파급해 나갔다고 한다.

시 ‘염소’는 교육의 문제점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풍자하고 고발한 작품이다. 염소의 ‘뿔’은 더이상 호신용 무기가 아니라 기껏해야 ‘나비’ ‘벌’을 들이받고 ‘공중’이나 치받는 장식용 꽃으로 전락해 버렸다. 즉 뿔의 성정 혹은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또한 염소는 제도의 폭력에 의해 ‘뿔’과 ‘근육’과 ‘짐승’을 덜어내고 쫓아내기 위해 부단히 채찍질을 당하고 있다. 염소에게서 뿔을, 근육을, 짐승을 뽑아내고 덜어내면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근대 교육제도는 이처럼 잔인무도하다. 철저하게 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정체성을 유린하고 절멸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모두 한 공장에서 제조해 출하한 제품들로 만드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는 불량품과 우량품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침내 이러한 지난한 단계적 학습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자들에게 근대의 제도는 많은 혜택을 부여한다. ‘향로’와 ‘거울’과 ‘수염’이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는 행복한가? 그는 우리가 준 ‘고삐’에 매여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가야만 한다. 시 ‘염소’는 규율과 훈육의 이름으로 개인들의 고유한 개성들을 말살시켜 마침내 우리 시대 보편적 상품인 ‘정상’들을 만들어 내는(여기서 낙오하는 자들은 감금과 금기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근대 교육제도의 폭력성을 고발한 작품이다. 염소들이여, 우리 시대 학생들이여, 그대들은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가.
2019-05-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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